타워크레인 쓰러지고 어선 침몰·여객선 좌초…5명 사망·1명 실종
자동차 공장·조선소 작업 차질에 하늘·바닷길 막혀…하천 범람 한 때 위험

(전국종합=연합뉴스) '역대급 강풍'과 '물폭탄'을 동반한 10월 태풍 '차바'가 5일 제주도와 남해안을 강타해 많은 피해를 남기고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

제주시 고산에서 측정된 차바의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56.5m이나 됐다. 한라산 윗세오름에는 한때 시간당 17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제주를 지나 남해안을 거쳐 동해안으로 빠져나간 태풍은 전남과 경남, 부산·울산에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재산피해를 남겼다.

◇ 크레인 넘어지고 파도에 휩쓸리고…5명 사망·1명 실종

이날 오전 11시 2분께 부산 영도구 고신대 공공기숙사 공사장에서 강풍에 넘어진 타워 크레인이 인근 컨테이너를 덮쳐 안에 있던 하청업체 근로자 오모(59)씨가 숨졌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52분께 부산 수영구 망미동 주택 2층에서 박모(90)씨가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또 오전 10시 43분께 부산 강서구 대항동 방파제에선 어선 결박 상태를 점검하던 허모(57)씨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울산에서는 구조작업을 하다 실종된 119 대원이 숨진 채 발견됐고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서도 주민 1명이 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오전 7시 4분께 제주항 제2부두에서 정박 중인 어선에 옮겨타려던 선원 추정 남성 1명이 바다로 떨어져 실종됐다.

전남 여수시 수정동 오동동 방파제에서는 1천321t급 여객선 미남크루즈호 선원 2명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으나 해경 122구조대가 20분 만에 모두 구조했다.

◇ 저지대 곳곳 어른 허리춤까지 침수·하천 범람

태풍 '차바'의 북상과 만조 시간이 겹쳐 남해안 해안에 접해 있는 시·군의 저지대 곳곳이 어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는 등 침수됐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어시장과 경남대학교 주변 해안도로에서도 바닷물이 차올라 침수됐다.

통영시 동호항 일대 동호동, 정량동 일대도 만조시간을 전후로 바닷물이 들이쳐 어른 정강이까지 물에 잠겼다.

하천 범람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제주시 한천이 한때 범람해 인근 주차장에 세워뒀던 차량 80여 대가 하천물에 휩쓸렸다.

산지천 하류도 범람 위기에 놓여 남수각 일대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제주시 외도동 월대천도 5일 오전 범람해 주변 가정집과 펜션 등 10여 채가 침수됐다.

월대천 범람으로 주민과 관광객 50여 명이 외도동사무소나 친인척 집으로 대피했다.

이날 오후 1시 20분을 기해 홍수경보가 내려진 울산지역에는 소하천 곳곳이 범람해 수십 명이 대피했다.

또 울산 회야댐의 방류량이 많아지면서 하류 주민이 긴급대피했으나 수위가 낮아져 대피령이 해제됐다.

경주시 감포읍 소하천이 넘쳐 인근 농경지가 물에 잠겼고 외동 동천이 범람해 인근 공단이 침수했다.

양남면 관성천도 물이 넘쳐 인근 주민이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

수렴천 제방 유실로 저지대 마을 일부가 침수했고 마을 주민에게 대피방송을 하기도 했다.

양북면 어일리 마을 전체에 물이 들어찼고 대종천 범람을 우려해 인근 주민이 대피 준비를 하고 있다.

불국동 안길과 황성동 유림 지하도도 물에 잠겼다.

경주 서천 둔치에 세워둔 차 수십 대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잠겼다.

◇ 정전피해 속출…경남·제주·부산 등 약 12만 가구 불편

강한 비바람에 정전피해 역시 속출했다.

한국전력 경남지역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까지 거제, 밀양, 통영, 하동, 남해, 창원, 함안 등 경남지역 7개 시·군 5만2천 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특히 오전 9시 20분께 거제 시내 철탑 전력선이 파손되면서 4만7천 가구에 전력이 끊기는 대규모 정전도 발생했다.

밀양 등 다른 6개 지역도 약 5천400 가구가 전력공급을 받지 못해 애를 먹었다.

제주도 역시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4만9천여 가구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부산에서도 오전중 한때 1만8천246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대평동을 포함해 영도 전역에서 가장 많은 7천700여 가구가 정전됐고, 강서구 명지동과 사하구 장림동 등지에도 각각 3천여가구, 1천800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울산은 오전 9시께 동구 동부동에서 전선이 끊어져 동부초등학교 일원 아파트, 주택, 빌라 등 약 2천 가구가 정전됐다.

전남 여수시에서도 상당수 가구가 정전이 됐다.

한전의 긴급 복구로 전력이 다시 공급되고 있으나 완전 복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자동차 라인 일시중단…거제지역 조선소도 작업 차질

산업계에도 자동차 생산 라인이 일시 정지하고 조선소 선박 건조 작업이 차질을 빚는 등 피해를 봤다.

현대자동차는 일부 생산라인 침수로 이날 오전부터 울산 1·2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1공장은 엑센트와 벨로스터, 2공장은 싼타페와 아반떼 등을 각각 생산한다.

또 출고 대기를 위해 야적장에 주차한 차량 중 일부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현대차는 비가 잦아들면 공장 안까지 들어온 물을 빼고 라인의 안전과 품질 점검 등을 마친 뒤 공장을 재가동한다는 방침이다.

거제에 있는 조선소도 태풍으로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아주동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비바람으로 인해 이날 외부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아주동 일대가 태풍으로 인해 오전에 정전됐으나 대우조선은 정전 직후 사내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조선소 가동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도 오전 야외작업은 하지 못하고 안전교육으로 대체했으며 옥내 작업은 그대로 진행했다.

◇ 초속 56.5m '역대급 강풍'에 산간 600㎜ 넘는 '물폭탄'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차바는 5일 오후 2시 현재 울산 동쪽 100㎞ 해상에서 1시간에 43㎞의 속도로 동북동진 중이다.

태풍 중심이 부산과 경남, 울산 등 남해안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해안가 일부지역에는 매우 강한 바람이 불고 바다에는 높은 파도가 일고 있다.

제주도는 태풍 경보에서 벗어났으나 오후 1시 현재 울산, 부산, 경남 해안가 7개 시·군, 경북 경주·포항시에는 여전히 태풍 경보가 발효중이다.

태풍주의보는 울릉도와 독도, 대구, 경남 내륙, 경주·포항을 제외한 경북 전역에 내려져 있다.

태풍 영향권에 접어든 4일 오후부터 5일 오전까지 한라산 윗세오름 624.5㎜, 어리목 516㎜ 등 산간에 많은 비가 내렸다.

산간 외 지역도 수백㎜의 비가 쏟아졌다.

4일 오후부터 5일 오전 7시 현재까지 제주(북부) 172.2㎜, 서귀포(남부) 288.9㎜, 성산(동부) 133.9㎜, 고산(서부) 26.1㎜, 용강 385㎜, 태풍센터 285㎜ 등 강수량을 기록했다.

한라산 윗세오름에 한때 시간당 최고 17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것을 비롯해 산간 모든 지역과 제주시 아라동과 용강 등에서도 시간당 강수량이 최고 100㎜를 훌쩍 넘었다.

바람도 거세게 몰아쳐 최대 순간풍속이 고산에서 초속 56.5m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제주 47m, 성산 30.4m, 서귀포 22.2m 등을 기록했다.

◇ 하늘길 차질·바닷길 통제…땅길도 곳곳 생채기

태풍 영향으로 이날 제주공항 출발·도착 항공편 42편이 결항, 승객 6천500여 명이 불편을 겪었다.

이날 한국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오전 7∼10시 국내외 항공편 42편이 태풍특보로 운항을 취소했다.

그러나 오전 10시 이후에는 항공기 운항이 재개됐다.

결항편 승객들을 위해 임시 항공기 11편이 투입됐다.

바닷길도 이날 제주를 찾을 예정이던 코스타 빅토리아호(7만5천166t)와 코스타 포츄나호(10만2천587t) 등 2척이 일찌감치 입항을 취소했다.글로리 오브 더 씨호(2만4천427t)는 기항 일정을 잠정 미뤘다.

지난 4일에도 코스타 세라나호(11만4천147t)와 스카이씨 골든에라호(7만2천458t) 등 2척이 기항 계획을 취소, 다른 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사파이어 프렌세스호(11만5천875t)는 입항을 오는 7일로 연기했다

제주와 다른 지방을 잇는 9개 항로 15척의 여객선 운항도 이틀째 중단됐다.

목포, 여수, 완도를 오가는 모든 항로의 운항이 전면 통제됐다.

광주공항에서는 광주와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 두 편이 결항했다. 김포에서 여수공항, 무안공항에서 제주로 가는 항공편도 모두 결항했다.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전남 고흥 거금대교, 여수 거북선대교는 한때 차량 운행금지나 속도제한 조치가 내려졌으나 모두 풀렸다.

(이정훈 김호천 김재선 고성식 변지철 전지혜 장덕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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