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책 선물로 피의자 100명 마음 연 여검사…검찰 내 잔잔한 화제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부산지검 강력부 서정화(37) 검사는 지난달 자신의 앞으로 도착한 서류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정갈한 손글씨 편지 한 장과 함께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증서'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검사님께서 보내주신 책을 읽으면서 공부해 오늘 중학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검사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원본을 보냅니다. 이제는 정직하게 법과 양심을 어기지 않고 살겠습니다."

합격증을 부친 이는 바로 4년 전 서 검사가 구속기소 한 20대 청년이었다. 흉기로 남의 돈을 뺏는 중죄로 징역 5년형을 받은 청년은 수사 당시 서 검사에게 "앞으로는 달라지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이에 중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검정고시 책을 사서 보내줬던 게 2년 전 일이었다. 그동안 구치소 안에서 책을 읽고 또 읽어 올해 결국 목표를 이룬 것이다. 청년은 "보잘것없는 제게 도움을 주셨다"며 거듭 감사하다고 썼다.

"정말 반가운 편지였습니다. 제가 하라는 대로 따라와 줘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마웠죠." 서 검사는 쑥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죄지은 소년과 청년들에게 편지와 책을 보내는 것은 그가 지난 8년간 꾸준히 해온 일이라서다.

2009년 창원지검 형사부 초임검사이던 서 검사는 당시 상사였던 황교안 현 국무총리로부터 "검사에겐 대기업 간부를 구속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던 서 검사는 곧바로 작은 실천에 들어갔다. 소년범들에게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책을 건네고 독후감을 써오라 한 것이다. 그런 뒤 소년들을 앉혀놓고 한참 동안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들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소년의 부모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 말은 귓등으로 듣던 아이가 검사님 말은 듣습니다." 서 검사의 눈에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에 보였다.

그는 그때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사비를 털어 소년·청년 피의자에게 책과 편지를 선물했다. 교도소에 수감되면 우편으로 보내줬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8년간 100여 명에 달한다. "책이 큰 희망이 됐다"는 감사편지가 올해만 13통이나 왔다.

"저도 실은 학창시절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간호사가 될 뻔하다가 학교를 중퇴하기도 했죠. 그래서 소년범들을 보면 제 얘기부터 합니다. 저도 방황하다 뒤늦게 검사가 됐으니 너희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서 검사의 이야기는 지난달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소개되며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대검찰청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최근 서 검사를 검찰 내 미담 사례로 선정해 격려했다고 12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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