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선 퇴진ㆍ하야ㆍ탄핵' 여론 악화에 盧정부 인사를 총리 발탁
野 "독선 대통령" 강력 반발…'총리 인준' 정국 핵으로 부상
靑 "책임 총리에 대폭 권한…내치맡겨 거국내각 취지 살릴 것"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강병철 기자 =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 사태'로 코너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책임총리 카드를 꺼내들며 국정 혼란 수습에 나섰다.

'내치' 부문에서의 '2선후퇴'까지 염두에 둔 파격적인 카드지만, 야당의 반발로 정국 정상화를 이끌어낼지는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은 2일 신임 국무총리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경제부총리로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국민안전처 장관으로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을 각각 내정했다고 정연국 대변인이 밝혔다.

이번 개각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고위 참모 5명을 물러나게 한 데 이어 사흘 만에 단행된 2차 인적쇄신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등 참모진 후임 인사를 먼저 한 뒤 총리 교체에 나설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벗어난 조치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 본격화로 박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대통령 지지율이 한 자릿수대까지 떨어지면서 참모진 인선보다는 내각의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게 먼저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야권에서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고 여야 협의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할 것을 촉구하고, 심지어 하야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해지는 등의 정국 상황도 전격적인 총리 교체의 배경이 됐다.

다만 박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거국중립내각보다는 '책임총리' 모델을 선택했다.

이는 국회가 여야 동의로 총리 후보자를 추천해 내각을 구성하자는 정치권의 거국중립내각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김 내정자의 지명 자체가 "사실상의 거국 내각"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국회 추천이나 야당의 의견 수렴 절차를 밟는 대신에 야권에 몸담았던 역량있는 인사를 지명하고 상당한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거국 내각의 '취지'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책임총리 김병준'에게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정부 정책을 마음껏 수정할 수 있도록 '그린 라이트(Green light. 허가 승인을 뜻함)'를 부여하는 등 정치권의 권한 분담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할 계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내정자는 책임총리라고 볼 수 있다"면서 "본인의 색깔대로 가면서 국무위원 인사제청 등 총리로서 상당히 발언권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병준호'가 닻을 올리면 박 대통령은 경제, 사회, 교육 등의 내치 부문에서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나 힘을 실어주면서 외교·안보와 북핵 대응에 집중할 것이라는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는 "김 내정자 지명은 거국내각이자 책임총리 성격으로 가는 것"이라면서 "헌정중단을 막기 위해서 국정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총리를 내세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임 국민안전처 장관인 박승주 내정자를 김 내정자의 추천으로 발탁한 것은 이미 책임 총리로서의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나머지 각료 인선에서도 김 내정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보여 더욱 강력한 권한이 실릴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김 내정자가 여야의 의견을 두루 경청해 양쪽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골고루 내각에 채워 넣는다면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거국 내각의 취지를 살릴 수도 있다.

또한, 이번 인사에서는 참여정부와 호남 출신 인사들을 상당수 기용함으로써 야권의 반발을 미리 차단하고 국회 인사검증을 무사 통과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도 엿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김 내정자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를, 박 내정자는 여성가족부 차관을 각각 지냈고, 임 내정자와 박 내정자는 모두 전남 출신이다.

아울러 내각 인적쇄신의 최대 목표가 국정 안정화인 만큼 현재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는 경제위기와 재난대처를 각각 지휘할 기획재정부와 국민안전처의 사령탑을 일신했다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주도하는 총리 인선에 반발하고 있어 이런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당장 총리 인준안의 국회 통과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야당은 총리 지명에 이르기까지 선후(先後)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며 더욱 반발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현 사태에 대해 진실을 밝힌 뒤 국정 수습을 위해 야당의 협조를 요청하는 '협치'를 실천해도 모자랄 판에, 일방적으로 인사권을 단행하는 과정을 밟은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독선적 대통령에게 절망을 느낀다. 앞으로 박 대통령은 더 큰 시련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이런 분노는 국민에게 더 큰 탄핵, 하야 촛불을 유발시키는 동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 3당은 박 대통령에 개각 철회를 요구하고 인사청문회 보이콧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 김 내정자가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거국내각 구성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책임총리' 카드에도 국정 표류가 더욱 길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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