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까지 협상…메이 총리 "결정 내렸으니 함께할 때"
72조원 이혼합의금·FTA·시민권자 거주권한·국경관리 등 난제 
협상기간 일상 변화 없을 듯…재계 '하드 브렉시트' 전망에 초조 

(런던·서울=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김수진 기자 = 영국이 반세기에 가까운 유럽연합(EU)과의 동거를 끝내고 새로운 관계 설정에 들어간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8일(현지시간) EU 탈퇴 절차의 시작을 알리는 통보문에 서명했다.

이 통보문이 29일 낮 12시30분께 벨기에 브뤼셀 EU본부 주재 영국대사를 통해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전달되는 순간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절차가 공식 시작된다.

작년 6월 국민투표에서 영국민이 52% 대 48%로 브렉시트를 선택한 지 9개월 만이다.

EU 정상들은 내달 29일 특별회의를 열고 브렉시트 협상 가이드라인을 채택할 예정이다. EU 유럽담당장관들이 세부적인 협상 지침을 마련해 승인하고, EU 집행위원회 브렉시트 협상 대표에게 협상 진행을 위임하는 후속 절차를 거친다.

이에 따라 오는 5월께 프랑스 정치인 출신의 미셸 바르니에 EU 집행위 협상대표와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영국 장관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협상을 본격 시작할 것으로 관측된다.

탈퇴 조항인 리스본조약 50조는 통보 시점으로부터 2년간 제반 관계를 다시 정하는 협정 체결을 규정한다.

양측은 내년 10월까지 협상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국 의회와 유럽의회 동의, EU 정상회의 승인 기간을 고려한 일정이다. 협정은 EU 정상회의 가중다수결(역내 인구 65% 이상 찬성하고 27개국 중 16개국이 찬성)로 체결된다. 이후 EU 27개 개별 회원국 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협상 타결에 실패하고 양측이 협상 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않으면 영국은 2019년 3월 29일 협정 없이 EU를 탈퇴하게 된다. '질서없는' 브렉시트를 맞는다.

메이 총리가 서명한 통보문은 7~8쪽 문서일 것이라고 일간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메이 총리는 통보문이 전달되는 시간에 하원에 출석해 연설할 예정이다.

언론이 사전 입수한 연설 발췌문에 따르면 메이는 "EU를 떠나기로 한 결정은 내려졌다. 이제는 함께 할 때"라며 통합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진영과 EU 단일시장 잔류를 주장하며 이날 독립 주민투표 요구안을 통과시킨 스코틀랜드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협상은 수많은 난제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4~5월 프랑스 대선과 오는 9월 독일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도 브렉시트 협상 진로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로 꼽힌다.

양측은 처음부터 이른바 이혼합의금을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일 전망이다.

EU 측은 2014~2020년 EU 예산계획 확정 당시 영국이 "구체적으로" 약속했던 분담금을 포함해 이혼합의금으로 600억유로(약 72조원)를 요구할 계획이다.

특히 EU는 영국이 이혼합의금에 동의하기 전에는 영국이 원하는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른 의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전략으로 영국을 압박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영국은 '나쁜 합의'(bad deal)보다 '합의가 없는 것'(no deal)이 낫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다.

독일 다음으로 많은 EU 분담금을 내는 영국은 2015년에 129억파운드(약 18조원·실지급금 기준)를 냈다. 메이 총리는 EU 회원으로 있는 동안 분담금을 내겠다고 했다. 협상 기간 영국은 여전히 EU 회원국으로 남는다.

FTA 협상도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메이 총리는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도 이탈하고 대신 FTA를 통해 EU 단일시장에 대한 최대한의 접근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EU 측은 '과실 따 먹기'는 없다고 못 박고 있다. EU 측을 이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혼합의금 등 여러 쟁점에서 강경 노선을 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특히 영국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에서 핵심 영역인 금융산업은 직격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런던에 유럽기반을 둔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패스포팅 권한'(EU 역내에서 국경에 상관없이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이 유지될 것이라는 희망을 접고 탈(脫)런던 계획을 마련한 채 떠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외 영국 내 EU 시민권자와 EU 내 영국 시민권자의 거주권한 보장 문제, 유럽인권재판소(ECHR) 관할,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의 북아일랜드 자유통행구역 등 국경문제, EU 기관 이전 등도 주요 쟁점들로 꼽힌다.

메이 총리로선 힘든 협상 상대와 별도로 국내에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 움직임도 차단해야 하는 도전도 극복해야 한다.

협상 타결과 상관없이 영국은 1973년 EU에 가입한 지 46년 만인 오는 2019년 3월 EU에서 공식 탈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협상 절차를 마무리짓는 2년 동안 영국민이나 EU 시민권자의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영국이 EU 법규를 자국법으로 옮겨 담거나 수정·폐기해야 하는 법규(지침 포함)가 10만개에 달해 이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협상 기간 EU 시민권자의 영국 이주를 제한하려는 영국 정부의 시도도 유럽의회의 반발에 가로막힌 상태다.

그러나 메이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의 탈퇴진영이 5억명 규모의 EU 단일시장을 완전히 떠나는 '하드 브렉시트'를 예고한 만큼 산업계는 고용 감소나 성장 둔화를 우려하고 있다.

한편 브렉시트를 반대해온 찬성진영의 의원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가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애초 약속한 장밋빛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탈퇴 결정을 의회에서 다시 검증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