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 가주 존엄사법 시행 1년

  치사약 처방 시한부 환자 504명, 예상치 3분의 1 수준
  사회적 비난 우려 의사들 결정 꺼려, 진행 과정도 복잡
"기독교 중심 한인사회는 더 심해…말하기 어려운 주제"

#"언니가 병원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고통받는 모습을 지금도 보고 있었다면 우리 가족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해왔는지 알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한 언니의 결정을 존중했다." - 존엄사를 선택한 루게릭병 환자 베치 데이비스의 여동생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람답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존엄사법(End of the Life Option)'이 시행된 지 지난 9일로 꼭 1년이 됐다. 

 존엄사법은 불치의 병으로 고통 속에 연명을 해야 했던 불치병 환자들은 물론 환자를 돌보느라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느끼고 있던 환자 가족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존엄사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생각보다 존엄사를 택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존엄사 지지 비영리 단체인 '컴패션앤초이시스'(Compassion and Choices)가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에서 존엄사법이 시행된 이후 치사약을 처방받은 시한부 환자는 총 504명이다. 이는 존엄사법 도입 당시 약 1500명이 치사약을 처방받을 것이라는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수치다. 존엄사법의 성패가 치사약 처방이 얼마나 많은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상당히 적은 편이다.

 이유는 뭘까.

 이는 존엄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의사가 많지않다는 데 있다. 존엄사법이 자율선택 규정인 까닭에 대부분 의사들이 치사약 처방을 꺼린다. 자칫 사회적으로 비난받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존엄사 진행 과정이 다소 복잡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기대 생존기간이 6개월 이하인 말기 불치병 환자에게만 존엄사법이 적용되는데, 환자는 최소 2명 이상의 의사에게서 정신적·신체적으로 치사약 처방을 선택 및 복용할 수 있는 안정된 상태라는 소견을 받아야 한다. 설사 존엄사를 인정하는 의사를 찾았다고 해도 환자는 2차례에 걸쳐 의사에게 처방을 요구해야 한다. 최소 15일 이상 간격을 두고 서면으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 기간이 짧은 말기 환자들이다 보니 실제 치사약을 처방받기 전에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거나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생존 기간 6개월 미만의 악화된 건강 상태에서 존엄사법을 따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한인 의사는 "존엄사는 가장 논의가 시급하면서도 가장 말하기 어려운 주제"라며 "교회가 중심된 한인 커뮤니티 특성상 치사약을 처방해준 한인 의사가 있다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사회'존엄사 대안'
'사전의료지시서' 관심  

 한인사회에선 존엄사 대안으로'사전의료지시서'(Advance Healthcare Directive)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전의료지시서는 사고나 불치의 병으로 죽음에 임박해 치료에 대한 결정을 환자 스스로 내릴 수 없게 될 경우를 대비, 미리 의료 결정을 명시해 놓은 서류다. 

 이 사전의료지시서 보급에 힘쓰고 있는 소망소사이어티(이사장 유분자)에 따르면 지난 한해에만 이 사전의료지시서를 받아간 한인 수가 3000여명이며 이 캠페인을 시작한 지 9년 동안 총 1만22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와 관련 소망소사이어티 김미혜 사무국장은 "미리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삶의 가치와 태도가 달라진다"며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전의료지시서는 18세 이상 의사 결정이 가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작성이 가능하며 2명의 증인이나 공증이 필요하다. ▶ 문의: (562)977-4580 소망소사이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