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팀 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 
 공석 중인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선임되면서 기술위원회 구성과 신임 대표팀 감독 선임의 절차를 진행해나갈 수 있게 됐다. 기술위원회가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될만한 후보를 추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최종 승인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몫이지만 기술위원회가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 추천하느냐가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대표팀을 이끌어갈 차기 사령탑이 누가 될지에 시선이 쏠린다.
 대한축구협회는 26일 김호곤 협회 부회장을 신임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 나선 김호곤 신임 기술위원장은 "기술위원 구성을 이번 주 안으로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는 위원회를 소집하려고 한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여러 의견을 수렴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감독을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김 신임 위원장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국내감독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과거 이룬 성적과 경험, 팀을 이끄는 전술능력 모두 중요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특히 선수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차기 감독의 요건으로 꼽았다. 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러본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 조건으로 한정하지 않고 기술위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하겠다는 생각을 강조했다.
 국가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오는 8월 말과 9월 초로 이어지는 이란(홈)과 우즈베키스탄(원정) 경기 결과로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느냐가 판가름난다. 이미 이란이 A조 1위를 확정하고 직행티켓 한 장을 차지해 한국으로서는 조 2위를 반드시 지켜야한다. 신임 대표팀 감독은 남은 2경기에 승부를 걸어 본선행에 성공해야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출발한다. 그런 이유로 최종예선의 부담감을 견딜 수 있는 감독, 대표팀 선수들의 특징이나 면면을 파악하고 있는 감독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경험이 있고 현 대표팀 선참급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본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1순위다, 또 전임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동했던 신태용 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 등이 하마평에 오른다. 더불어 현 대표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2012 런던올림픽 세대를 잘 아는 홍명보 전 항저우 감독과 단기전에 강한 최용수 전 장쑤 감독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김호곤 신임 위원장이 거론한 요건에 부합하는 인사들이다.
 기술위원장의 선임으로 신임 대표팀 감독 선임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차기 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신임 위원장에게 쏟아지는 실문은 차기 감독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김호곤 위원장은 감독에게 필요한 조건이나 후보군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전임 이용수 위원장이 사퇴를 발표하면서 사견을 전제로 후보군을 상당히 좁혔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취재진이 현재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사들의 실명을 '대놓고' 거론하며 질문을 반복했음에도 "대표팀 경험이 없거나 현재 다른 팀의 감독을 맡고 있어도 후보군에 두고 생각할 것이며 백지상태에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을 뿐이었다. 오히려 "반드시 경험 많은 베테랑 감독이어야 한다면 내가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던지며 젊은 감독들의 등용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유연하게 핵심을 피해 답을 했다.
 '선수들과 소통이 잘 되면서 성적을 낸 경험이 있는 국내감독'이라는 조건 안에 포함되는 인물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기술위원회는 그 안에서도 실리와 명분 가운데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느냐를 두고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과 결별한 이유가 부진한 경기력과 그로 인한 월드컵 본선행 위기 초래 때문이었던 만큼 본선티켓 확보라는 실리에 집중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력은 물론이고 협회행정에까지 퍼진 팬들의 실망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혁의 의지를 표현할 신선한 카드를 내놔야 한다는 명분론도 무시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대표팀 감독에게 선수 선발과 코칭스태프 구성의 전권을 일임하고 기술위원회는 조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구계 대선배이자 경륜있는 김호곤 부회장을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한 것도 신임 감독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전임 감독처럼 독선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는 정몽규 회장의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국내 감독은 '서로 잘아는 축구계 선후배'이기 때문에 젊은 감독의 경우 위원장을 통해 전해지는 기술위의 조언이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신임 대표팀 감독은 이르면 다음달 초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