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기류 변화 조짐 맞물려 '레드라인 못 넘을 것' 판단한 듯
"한반도 전쟁 없을 것" 단언…'북미화해→남북관계 개선' 계산
레드라인 넘으면 '도리 없다' 北에 최후통첩 경고 의미도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북한이 넘지 말아야 할 구체적인 '레드라인'(금지선)을 처음으로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레드라인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공개는 북핵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지만 그 기저에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ICBM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핵탄두 소형화 기술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 상황에서 이를 결합한 무기화를 마지노선으로 그은 것은 북한이 그런 상황을 조성하거나 실제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겠다"고 단언하면서 "국민께선 안심하고 믿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의 전쟁을 불사할 것 같은 설전 속에서 '한반도 전쟁 불가' 메시지를 수차례 발신했던 문 대통령이지만 이날 화법은 더욱 단호하고 확신에 찼다.

그 판단 근거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촉즉발로 치닫던 북미 간 대치 상태가 최근 누그러질 조짐이 보이는 국면과 맞물리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괌 포위사격' 엄포를 놓았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당분간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겠다며 위협 언행 자제에 들어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호응하며 확전 자제 모드가 가동된 분위기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미 국무부는 이날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동북아 안정을 저해하는 언행 중단 등 3대 선행 가이드라인을 내걸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대북 대화 전제 조건으로 북핵폐기를 거론한 것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북핵 동결을 대화의 전제로 내걸었던 문 대통령의 북핵폐기 로드맵과 사실상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북미 간의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북한 문제 해결의 '틈새'를 포착했고, 이를 토대로 한 자신감 속에서 레드라인을 공개한 것일 수 있다.

북미 간 최근 누그러진 분위기가 더욱 익어가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 북핵 문제 일괄 타결을 위한 북미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

북핵 문제 해결의 당사자를 북한과 미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문 대통령도 지속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직접 대화를 권유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이런 기조에 동조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북미 간 최근 분위기가 더욱 익어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 낮은 단계라 할지라도 북미 접촉이 공식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미 간 누그러진 기류는 문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겠다고 한 남북관계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가장 쉬운 것부터 하자"면서 이산가족상봉과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북한에 제안한 문 대통령에게는 북미 간 기류 변화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호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레드라인 공개가 북한이 이를 넘을 경우 문 대통령으로서도 더는 대화 기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의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이 한미정상이 합의한 평화적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 호응하지 않고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우리(한미 양국)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이날 공개된 구체적인 레드라인을 넘으면 문 대통령으로서도 더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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