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대 도시 휴스턴, 기록적 폭우에 거대한 '물의 도시'로 변해 
이재민 수천명에 사상자 속출…주방위군 3천명·헬기 동원 구조작업 총력
최대 630mm 더 내릴 듯…막대한 습기 머금고 천천히 이동해 피해 커져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권혜진 기자 =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미국 텍사스주를 강타한 2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휴스턴은 물에 잠겨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미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만으로 과거의 '역대급' 재난재해와 비견되는 가운데 앞으로 며칠 동안 '물폭탄'이 더 쏟아질 것으로 예보되면서 당국과 주민들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 지붕 위에서 깃발 흔들며 구조요청…방송국·병원도 폐쇄

AP·AFP 통신에 따르면 휴스턴 곳곳에선 갑작스러운 물난리에 집이 침수되자 지붕 위 또는 고지대로 대피한 주민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응급구조 당국은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헬기를 탄 구조 요원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고지대로 피하거나 지붕으로 올라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붕 위로 대피한 일부 주민들은 깃발을 흔들며 구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USA투데이가 보도했다.

목이 빠져라 구조를 기다리던 주민 상당수는 자력으로 살길을 찾기도 했다.

이날 아침 일어나서 보니 집 1층이 물에 잠겨있었다는 한 여성은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해 창문을 부수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집에 보관하던 고무보트와 물놀이용품, 공기 주입식 매트리스 등이 모두 동원됐다.

애완동물을 전용 상자에 담아 나오거나, 생필품이 담긴 쓰레기봉투에 손에 쥔 채로 튜브에 매달린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휴스턴에서 지난 15시간 동안 걸려온 911 전화는 총 5만6천여 통으로 하루 평균치의 7배에 이를 정도였다.

바로 며칠 전까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길은 진회색 흙탕물에 잠겨 길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조차 없었으며 주요 도로는 침수 또는 침수 우려로 통행이 중단됐다.

주요 고속도로가 침수되면서 주민 대피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악천후로 공항 두 곳이 모두 폐쇄되고 8만2천 가구가 단전된 가운데 지역 방송국까지 방송 송출을 중단하자 휴스턴 전체는 부지불식간에 주민들이 대피하고 이들을 구하기 위한 구출작전이 펼쳐지는 재난현장의 중심이 됐다.

지역 병원 두 곳에서도 홍수로 문을 닫고 환자들을 전원 대피시키는 소동이 벌어졌다.

◇ '카트리나 재연 막자' 軍 투입해 대대적 구조작전

정부 당국은 지난 2005년 1천200명의 사망자를 낸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가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곧바로 전방위적인 구조활동을 벌였다.

일단 재난 당국은 헬리콥터, 비행선부터 차체가 높은 차량까지 총동원해 구조에 나섰다. 일찌감치 전시회장은 이재민을 위한 대피장소로 개방했다.

밤사이 방위군이 3천 명 급파됐으며 다른 주에서도 구조대를 보내 인명구조 활동을 지원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응급구조대를 조직, 주민들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가 하면 집 2층이나 다락으로 대피했다가 추가 범람으로 고립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지붕 위로 대피한 뒤 이불이나 수건을 활용해 조난신호를 보내도록 안내했다.

악천후에도 헬리콥터 20대가 계속해서 상공을 비행하며 지붕 위에 발이 묶인 주민들을 구조했다.

해리슨 카운티 보안관은 트위터를 활용해 구조 요청을 접수했다. 한 여성은 "아이들 2명과 있는데 물이 곧 우리를 삼킬 것 같다"며 트위터로 조난을 요청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폭우로 피해 지역이 확대되면서 당국의 구조활동은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재난당국은 현재까지 2천 건 이상의 긴급구조활동이 이뤄졌다고 강조했지만, 사망자만도 이미 최소 5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당국이 대피 명령을 조금 더 일찍 내렸어야 한다며 부실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비가 가장 먼저 휩쓸고 간 해안도시 락포트 인근 빅토리의 한 주민은 "이 정도인 줄 알았으면 미리 대피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실베스터 터너 휴스턴 시장은 "대피 명령을 내렸다면 230만 명이 도로 위로 쏟아져나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재난 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 상황 등을 감안해 생사가 달린 지역 구조를 최우선시했다고 밝혔다.

◇ "경험해본 적 없는 강수량"…초등학생 키 만큼 쏟아지는 곳도

미 국립기상청(NWS)은 하비가 텍사스 주에서 빠져나가기 전 누적 강우량이 최대 1.3m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의 키에 맞먹는 수치로, 단 이틀간 연간 누적 강우량에 맞먹는 물폭탄이 쏟아진 셈이다.

하비는 카테고리 4등급 허리케인으로, 3등급이었던 카트리나보다 더 강하다. 미국 본토에 4등급 허리케인이 강타한 것은 13년 만이다. 특히 텍사스주는 1961년 허리케인 칼라가 상륙한 이후 50여 년 만에 카테고리 4등급 허리케인을 맞았다.

NWS는 성명에서 "이번 폭우의 범위와 강도는 이전의 그 어떤 경험도 뛰어넘는다"고 밝혔다.

NWS는 지난 24시간 동안 휴스턴과 인근 갤버스턴에 610mm(2피트) 이상의 비가 내렸고, 앞으로 510mm(20인치)가량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지역에 따라 향후 며칠 동안 380∼630mm(15∼25인치)의 추가 강수량을 기록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NWS 날씨예보센터의 패트릭 버크는 USA투데이에 "우리가 지금 강조하려는 것은 홍수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라면서 "어떻게 될지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도 막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 주지사는 피해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고,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역대급 재난"이라며 회복하려면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웨더채널의 기상학자 그레그 포스텔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홍수 재해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휴스턴을 비롯한 텍사스 해안 지역은 여러 정유회사의 본거지이자 대형 항구가 많아 직접적인 경제 피해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실제로 엑손모빌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베이타운 정유 복합단지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 왜 피해 큰가…역대급 허리케인 피해와 맞먹을까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번 허리케인의 무서움은 바람이나 그 속도, 또는 폭풍해일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습기를 품고 느린 속도로 빙 돌아가는 경로로 움직인다는 점에 있다.

같은 지역을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당 10㎝(4인치)의 비를 집중적으로 뿌리는 하비의 특징이 홍수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2005년 카트리나, 2012년 샌디와 같은 역대급 허리케인 피해에 필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천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카트리나는 뉴올리언스를 완전히 초토화시키면서 1천80억 달러(약 121조 원)라는 사상 최대 피해를 낳았고, 샌디는 750억 달러(약 85조 원)의 피해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하비는 장기간 많은 비를 내릴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에서 2001년 텍사스 주를 2주 동안 강타한 앨리슨을 연상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앨리슨은 당시 3만여 명의 이재민과 23명의 사망자, 90억 달러(약 10조 원)의 손실을 발생시켰다.

luc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