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경험이 있어 이 임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선수 시절 '4강 신화', 지도자 시절 '런던 기적'을 연출했던 홍명보(48.사진)가 행정가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행정 실무를 맡게 된 그는 "10여년의 지도자 생활이 있어 이 임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며 자신이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서 느꼈던 숱한 경험을 녹여내겠다고 다짐했다.
홍 전 감독은 8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조직 개편에서 행정을 총괄하는 새 전무이사로 선임됐다. 협회는 아울러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코스를 마친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36)에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겼다. 홍 전무를 보좌할 사무총장엔 전한진 국제팀장을 발령했으며, 기술위원회를 기술발전위원회와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회로 나눠 축구 발전 정책 및 기술 연구 기능을 담당할 기술발전위원회에 이임생 전 텐진 테다 감독을 임명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감독 등 각종 대표팀 감독을 뽑는 임무가 막중한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은 추후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인사 혁신에서 가장 화제로 떠오른 인물은 역시 홍 전무다.
현역 시절 1990.1994.1998.2002년 등 월드컵 본선에만 4차례 출전했고 2002년엔 '브론즈볼(MVP 투표 3위)'을 수상했던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코치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땐 감독으로 나섰다. 브라질 월드컵 2년 전인 2012년 런던 올림픽 땐 스위스와 영국, 일본을 제압하며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위업을 이끌었다. 2016~2017년 중국 항저우에서 감독 생활을 한 뒤 이번에 행정가로 새출발하게 됐다.
홍 전무는 2004년 미국 LA 갤럭시를 끝으로 현역 은퇴한 뒤 행정 쪽으로 진로를 잡았으나 독일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부임한 딕 아드보카트 당시 대표팀 감독이 그의 코칭스태프 합류를 요청하면서 지도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0년간 국가대표팀 코치와 청소년대표팀 및 올림픽대표팀 감독, 국가대표팀 감독, 중국 프로구단 사령탑 등을 지낸 끝에 당초 꿈이었던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됐다. 국가대표팀의 콜롬비아전(10일) 및 세르비아전(14일)이 끝난 뒤인 16일부터 상근 직원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출근하는 홍 전무는 취임 일성으로 '탁상공론 철폐'를 외쳤다. 홍 전무의 취임은 '히딩크 논란'과 대표팀 가치 하락 등 한국 축구가 맞은 어려운 시기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선택한 개혁의 승부수다. 홍 전무는 8일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뭘 맡으려고 하면 어려운 시기가 온다"며 '허허'하고 웃은 뒤 "어려울 때일수록 피해가면 안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비록 지금은 어렵지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지도자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가에 대한 의욕이 더 커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코치와 감독 생활이 없었다면 이 직무를 선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지도자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길에 나서게 됐다"며 "탁상공론, 탁상행정이란 말이 있질 않나.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뜻인데 적어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게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녹여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전무가 보는 한국 축구의 위기는 비단 대표팀에만 국한되질 않는다. 대표팀이 부진해 표면화되고 팬들이 우려하는 것일 뿐 한국 축구의 기초는 오래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대표팀 때문에 한국 축구가 힘든 시기인 것 같지만 학원축구, 클럽축구 등 유소년부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대표팀의 성적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며 "대표팀은 대표팀을 관리하는 그룹이 별도로 있다. 내 역할은 전무 아닌가. 유소년 축구의 목소리를 듣고 발전이 이뤄지도록 반영시킬 생각이다"고 했다. 그는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일과 함께 협회란 조직을 아우르는 업무 역시 맡는다. 홍 전무는 10여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협회 내 직원들과의 스킨십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정 회장의 개혁 의지가 강하다"며 "협회 직원들은 얼굴만 알았고 같이 일해본 적은 없지만 능력있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여겨진다. 이젠 그라운드가 아닌 사무실에서 (직원들의)잠재력을 끌어내겠다"며 다시 너털웃음을 지었다.협회는 최근 2002 월드컵 4강 멤버들의 코칭스태프 중용을 진행하고 있다. 설기현이 '슈틸리케호' 시절 코치를 맡았고 '신태용호'에선 김남일과 차두리가 코치로 부임해 선수들과 소통한다. 이번 인사 혁신을 통해 홍명보와 박지성이란 2002년 월드컵의 두 거물이 동시에 행정가로 나서게 됐다. 일각에선 "정 회장이 행정 경험 부족한 홍 전무와 박 본부장에게 중책을 맡기는 일종의 스타 마케팅으로 위기를 넘어가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까지 일축하고 한국 축구의 새 돌파구를 마련하는 중책이 홍 전무 어깨에 얹혀졌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