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증거인멸 염려 있다" 영장 발부 법정 구속, 특검·특수본·국정원수사팀'영장 삼고초려'결실


20세에 '소년 등과'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승승장구
2014년 靑민정비서관 복귀 후 朴정부 최고실세 부상


'소년급제'이후 30년 간 법조계에서 승승장구해 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0·사법원수원 19기)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박영수 특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두 차례 영장 청구를 막아낸 우 전 수석도 누적된 수사자료를 바탕으로 한 국정원 수사팀의 영장 청구에 무릎을 꿇었다.

15일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새벽 "혐의사실이 소명되고 특별감찰관 사찰 관련 혐의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라며 검찰이 청구한 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이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지난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를 거쳐 이번이 세 번째였다.

학창시절 우병우는 천재로 소문났었다. 서울대 법대 84학번인 우 전 수석은 대학교 3학년인 1987년 제 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만 20세의 나이의 '소년 등과'로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기록을 갈아치웠다.

우 전 수석은 199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하며 검찰에 발을 들였다. 검사 임관 성적도 차석으로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촉망받는 차기 선두주자였다.

짧은 시련도 있었다. 1992년 한직으로 꼽히는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발령됐다. 하지만 이후 법무부, 서울중앙지검 부장, 대검찰청 중수1과장·수사기획관 등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왔다.

이 과정에서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특별수사관으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시절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사건 수사에도 참여했다. 법조계에선 그를 '특수통 최고 칼잡이'로 추켜세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는 그의 검사 이력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 대검 중수부 수사 1과장이었던 우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후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연달아 두 번 고배를 마시고 2013년 검사복을 벗었다.

우 전 수석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이듬해 5월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비서관 발탁 8개월만에 민정수석으로 보직이 수직상승, 사정기관을 총괄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우병우 사단'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됐다.

국정원 수사팀은 지난 11일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부터 최근의 국정원 등 적폐수사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특정인을 상대로 3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우 전 수석이 유일하다.

결국 검찰의 '영장 삼고초려'가 결실을 맺었다. 세간에서는 우 전 수석을 향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어 '법꾸라지(법+미꾸라지)'라고도 한다. 우 전 수석도 구속수감 중인 김 전 실장의 뒤를 따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