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흥청망청' 연말 술자리 마다하고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끼리 '송년 여행'부쩍 늘어

동문회·직장 회식등 계속 이어지는'술 모임'부담
"가까운 사람들과 여행, 한해 돌아보며 더 큰 의미"
관광업계 "6~8명 한팀으로 예약하는 건수 크게 증가"

#한인 기업의 영업 파트에서 일하는 김모(34)씨는 연말 송년회 일정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속이 쓰려온다. 업종 특성상 평소에도 술자리 회식이 많은 편인데 송년회만 되면 술자리가 더 길어지고 분위기도 강압적으로 변해 쉽게 귀가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2차는 물론 밤 늦게까지 부하 직원들을 붙잡는 상관들은 '공포의 대상'"이라며 "평소에 좀 자제하는 분위기의 상사들도 송년회라면 괜찮다고 생각해 억지로 술자리에 남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울상을 지었다.

#장모(61)씨는 올해 좀 색다른 송년회를 준비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 부부 동반으로 주말을 이용해 1박2일 일정으로 샌디에고로 송년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에어비앤비로 하우스를 전체를 예약했다. 식당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술만 먹었던 송년회가 이제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준비했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 장씨는 "밥 먹고 술마시고 취해 떠들다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유 있는 환경에서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계확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매년 이맘때면 송년회 일정으로 달력이 빼곡히 차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친구, 동료들과의 모임자리는 즐겁지만 아직도 '송년회하면 '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송년회 문화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음주가무로 흥청망청 보내는 송년회 대신 여행을 떠나는 한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가 점차 고령화되고 이민자가 줄어들어 예전처럼 모임이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인타운 대형식당과 호텔 등은 이미 송년모임 예약으로 꽉 찼다.

한인들에게 송년회는 한해의 업무를 정리하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단합의 장'이 아니라 '망년회'라고 해서 먹고 마시고 떠들며 한해 앙금을 술과 함께 털어버리는 시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다 보니 평소 술 주량을 넘어 과음하게 되고 송년회가 추태와 고성, 때로는 싸움으로 번지는 모습도 흔하다.

특히 직장인들의 경우 관습적으로 이어지는 술자리 일변도의 송년회에 '마지못해'자리를 지킨다고 실토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술자리에 건강도 걱정이다. 이모(43)씨는 "이런저런 모임때문에 이번 주일엔 세번이이나 송년회 술자리가 잡혔다"면서 "건강을 염려하는 아내의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술자리를 피하고 남다른 형식의 송년회를 준비하는 한인들도 등장했다. 바로 여행이다.

번잡하고 천편일률적인 송년회 대신에 여유 있고 대화를 깊게 나눌 수 있어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다는 점에서 여행을 선호하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 과음을 피할 수 있어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이런 추세는 한인 관광업계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평상시 2~3명 단위로 예약이 되는 것에 비해 최근 들어 6~8명이 한팀이 되어 예약을 하는 건수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송년회 여행지로 국립공원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유럽 여행이나 크루즈 여행도 인기 상품이다.

한인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족단위로 보이는 예약이 부쩍 늘었다"며 "이미 크리스마스 이전 예약은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대도, 사람도, 문화도 바뀌어도 깨질 것 같지 않게 보였던 '송년회는 술'이라는 공식이 즐겁거나 최소한 의미있는 자리가 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작지만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