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해킹 취약점 수개월 침묵…"CEO는 사전에 주식 매각"
"패치 깔아도 PC 성능 30% 저하" 2차 피해 우려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몰래 저하시킨 이른바 '배터리 게이트'에 이어 이번엔 '반도체 공룡'인 인텔의 컴퓨터 칩에서 해킹에 취약한 결함이 발견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인텔은 특히 수개월 전 결함을 인지하고도 소비자에게는 쉬쉬해온 데다 일찌감치 최고경영자(CEO)가 자사주를 대거 팔아치우기도 했다는 점에서 제2의 애플 게이트로 번질지 주목된다.

문제가 된 인텔 칩은 최근 10여년간 생산된 것으로, 전세계 PC 시장에서 인텔 점유율이 80%를 웃도는 만큼 각국에서 나온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에 패치(수정 프로그램) 업데이트 등의 조치가 필요하게 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패치를 적용하면 PC 성능이 최대 30%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소비자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이번엔 '인텔 게이트' 번지나

인텔을 둘러싸고 불거진 문제는 중앙처리장치(CPU) 칩인 'x86' 프로세서의 설계 결함 때문에 컴퓨터에 저장된 개인정보가 해킹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3일(이하 현지시간) 구글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보안 전문가들은 인텔 칩에서 해킹에 취약한 결함인 '멜트다운'(Meltdown)과 '스펙터'(Spectre)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멜트다운은 해커들이 하드웨어 장벽을 뚫고 컴퓨터 메모리에 침투해 로그인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훔치게 한다는 점에서 이용자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

이에 대해 인텔 CEO인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CNBC 방송에 나와 "휴대전화, PC 등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제품마다 정도는 다를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문제를 시인했다.

스펙터는 인텔을 포함해 경쟁사인 AMD, ARM홀딩스 등 3사의 칩에서도 발견됐다.

이에 따라 사실상 시중에 돌아다니는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클라우드 서버 등의 상당수가 해킹에 취약한 결함에 노출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불거진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와 맞물리면서 세계 시장을 거머쥔 IT 대기업들이 정작 소비자에겐 약점을 숨겼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특히 애플과 인텔은 사전에 자사 제품의 잠재적 문제를 알고도 인터넷 공간에서 논란이 불거진 뒤에야 뒤늦게 문제를 시인하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점에서 기업 신뢰도에도 금이 가게 됐다.

◇ "패치 업데이트하면 오히려 성능 저하"

인텔은 논란이 불거진 뒤인 3일 낸 성명에서 "이번 사안을 해결하려 AMD, ARM홀딩스를 포함한 업체들과 협의해왔다"면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하기 시작했으며, 다음 주 더 많은 업데이트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RM홀딩스도 스마트폰 제조사를 포함한 협력사에 이미 패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제조사의 칩을 쓰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자체적으로 수습책 마련에 나섰다.

구글은 최신 보안 업데이트를 한 안드로이드, 픽셀, 넥서스 스마트폰은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MS도 이번 사안을 해결하고자 윈도10 OS(운영체계)를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윈도7과 8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맥 OS에 대해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이버 보안 업체 트레일오브비츠(Trail of Bits) 관계자는 "각 기업이 신속하게 취약 시스템을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해커들이 금세 취약점을 공격할 코드를 개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패치를 내려받으면 CPU 성능이 5∼30%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문제를 처음 퍼트린 영국 인터넷 매체인 레지스터(Resister)는 익명의 프로그래머들을 인용해 이러한 잠재적 부작용을 경고했다.

◇ 인텔 CEO, 결함 알고 자사주 대거 매각했나

인텔은 이미 수개월 전 구글로부터 칩의 결함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소비자에겐 침묵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구글 연구원들은 이런 취약성을 발견하고 지난해 6월 인텔에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에 비춰 인텔은 최소 6개월가량 문제를 쉬쉬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다 크르자니크 CEO가 자사주 2천400억 달러(255억 원)를 팔아치운 시점이 지난해 11월이었다는 점에서 주가에 악재가 드러나기 전에 발을 뺀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일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4일자 기사에서 "크르자니크 CEO는 이미 10월에 주식을 매물로 올려놨다"면서 이는 인텔이 잠재적 해킹 취약성을 알게 된 6월 이후라고 지적했다.

인텔 대변인은 이에 대해 "주식 매각은 이번 사안과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 주가는 전날 3.4% 하락 마감했다.

newgla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