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조동혁 내과·신장내과 전문의

태어나면서부터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계의 생명체들은 경쟁을 한다. 그 중 가장 힘이 센 생명체가 살아남고 번창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서 유일하게 제외되는 생명체가 인간이다. 인간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하고 학교와 직장에서도 항상 경쟁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그 경쟁속에서도 남을 배려할줄 알고 약한자를 돕는방법을 배운다. 거의 모두가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힘들게 벌어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세상은 인간들이 모두 어우러져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다. 나만 편하자고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의 편안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생기기 나름이다. 반대로 내가 조금 불편해도 남을 배려하는 작은 마음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이 아주 큰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종종 지팡이도 없이 멀쩡하게 걸어다니시는 분이 '장애인 파킹 퍼밋'을 받겠다고 DMV(가주 차량국) 장애인 진단서를 써달라는 일이 있다. 한달에 평균 환자 두명 정도가 이런 요구를 해온다. 그런 환자들에겐 "불편없이 걸어다니시는 분께서 장애인 파킹랏에 세우시면, 정작 휠체어를 타고 오는 장애인 환자는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힘들지 않겠습니까"라고 거절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그사람은 그사람이고, 나도 힘드니 진단서나 내줘"라고 되레 언성을 높인다. '절대로 안된다'고 하면, "다른 의사들은 다 해주는데 뭐 여기는 이렇냐", "그러니까 병원이 손님이 없지", "의사가 어려서 영 융통성이 없네"등의 비난을 쏟아낸다. 그리고는 "다음부터는 이 병원에 오지않겠다"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그런가, 필자는 일부 노인 환자들 사이에서 '아주 융통성 없는' 의사로 불리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환자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여러분은 융통성있게 장사 잘하는 의사를 원하셨던 겁니까?"

세상은 그렇게 넓지 않다. 어떤 사람이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LA한인타운에서 '가짜 진단서'로 받아낸 장애인 파킹 퍼밋을 받아 몇 안되는 장애인 주차 공간에 차를 세워놨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 때문에 그 자리에 주차를 못한 '진짜 장애인'이 그 사람의 친척이거나, 가깝게 알고 지내는 지인 중 하나라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는가.

새해엔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남을 배려해주는 마음으로 밝고 명랑한 한인 타운을 만드는데 모두가 참여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사족 하나. 필자는 새해에도 장애인 파킹 퍼밋 진단서 문제만큼은 여전히 '융통성 없는'의사로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