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목표…공감대 형성이 관건
아베 고심 끝 참석 '한일관계 진전 의지' 긍정적 대목
양측 의견 차이만 재확인하고 평행선 달릴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4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일관계가 중대 분수령을 맞을 전망이다.

12·28 '한일 위안부합의'의 효력을 둘러싸고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아베 총리의 방한이 이뤄지는 것이어서 향후 한일관계의 '온도'와 '방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24일 도쿄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있는 만큼 같은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가서 선수단을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한으로 지난해 7월과 9월 각각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독일과 러시아에서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양국 정상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 사실상 확정됐다.

일단 아베 총리가 방한을 결심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지난달 말 외교부가 '위안부 합의'에 사실상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을 발표한 데 이어 일본이 '위안부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양측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발사에 따라 '최대한의 대북 압박·제재'로 보조를 맞추던 양국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정상이 직접 대면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꽉 막힌 경색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위안부 합의 문제를 놓고 양국이 근본적으로 입장차를 좁힐 수는 없지만, 현재 최악의 상황에 놓인 양국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만큼은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일본 본토 타격을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푸는 데 우리와의 공조가 필수인 아베 총리가 역사문제와 양국간 안보협력을 분리해 양국 관계를 풀고자 하는 문 대통령과 전략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최선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사드식 해법'으로 위안부 합의를 바라보는 양국의 입장을 상호 존중하는 선에서 '봉인'하는 정도만 된다 해도 한일관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롭게 틀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국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치유금 성격으로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 문제나 화해·치유 재단 해체 문제와 같은 첨예하지만 지극히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4일 기자들을 만나 "아베 총리가 올림픽에 참석해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만남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사항을 논의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물론 현시점에서 두 정상이 만난다고 하더라도 한일관계 회복에 급격한 진전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양국 국내의 정서와 여론을 감안할 때 정상 차원에서 합의점을 찾거나 의견접근을 이루기는 힘들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지적이다.

특히 아베 총리가 방한 계획을 발표한 이날 한일 양국은 언론을 통해 강경한 입장을 주고받았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확실하게 전달할 것"이라며 "한국이 일방적으로 추가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녀상 철거 문제도 '강력히'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정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말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소녀상 철거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 정부의 입장을 말할 것"이라고 밝혀서 아베 총리의 요구에 미리 선을 그었다.

만나기도 전에 이처럼 강대강 대치를 연출한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의미있는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아베 총리가 방한을 결심한 데에는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전략적 고려가 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이번 방한 때 일본 국내 지지층을 고려해 문 대통령에게 위안부 합의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기회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대두하고 있다.

다만 양국 모두 북한의 핵·미사일이라는 공통의 도전과제에 직면해있고 미국과 각각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관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kj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