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미투'는 성차별적 구조 근본 개선하라는 요구"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이효석 최평천 기자 = "몇 년 전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그 뒤에 너무도 뻔뻔하게 자신은 티끌만큼도 잘못이 없는 것처럼 '사랑한다' 말하고 웃는 그 사람의 태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몸을 더듬기에 거절했는데 오히려 나를 더 우습게 봤다. 더는 이렇게 성적으로 모욕당하는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이상 페이스북 미투 대나무숲)

상급자로부터 추행을 당했다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연극연출인 이윤택 씨 등 예술계 거장이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정치권 거물들에 대한 성폭행 폭로가 이어지면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대체로 '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 특성상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부하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여성 대다수도 초점이 권력형 성폭력에 맞춰지는 데에 공감한다.

그러나 권력형 성폭력이 아닌, 겉보기에 동등한 관계에서의 성폭력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실제로 미투 대나무숲 등을 보면 동등한 관계에서 겪은 성폭력을 고발한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리적인 추행이나 성폭행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성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몸매나 외모를 평가하는 등의 여성혐오 발언을 면전에서 들은 경험은 한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대학 동기나 후배, 심지어 남동생한테까지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여성들은 털어놓는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이모(37·여)씨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여성이라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성희롱성 발언을 들으며 평생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학자들은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남성 중심적이었던 탓에 일상적으로도 남성이 우위를 점하는 '젠더 권력'이 존재해서, 선후배 같은 상하관계가 아닌 겉보기에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도 젠더권력에 의한 성희롱 내지 성폭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다 보니 젠더 권력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고, 이로 인해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라면서 "미투운동은 비단 공적인 영역이나 학교, 회사뿐 아니라 일상의 거대한 성폭력까지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미투'는 성차별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라는 일반여성들의 목소리"라면서 "'가해 남성 망신주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성들이 이런 점을 인지하고 주변 여성들에 대한 자신의 언행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검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미투 운동의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직장사회에서는 평소처럼 성희롱성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가 곧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여성 동료에게 사과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회사원 김모(32·여)씨는 "최근 '혹시 내가 그렇게 말한 거 기분 나빴어?', '미처 생각을 못 하고 말했는데 내가 실수한 것 같다'는 등 남성 동료들이 곧바로 사과하는 경우가 늘었다"라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이 추행이나 희롱의 범위에 들어간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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