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내 범행대상 확장…존속살해 매년 증가 추세
전문가 "물질만능주의 영향…말 한마디에 쌓인 앙금 폭발"

(전국종합=연합뉴스) 부모나 형제 등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패륜 범죄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기존 가족 간 범죄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자식의 범행이 상당수였지만 최근에는 고모할머니, 이모, 손아래 동서 등 범행 대상이 가족 내에서 확장하는 추세다.

패륜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쉽게 간섭할 수 없는 가족 간 문제라는 성격 탓에 뚜렷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전북 고창경찰서는 22일 고모할머니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김모(58)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전날 오후 2시께 전북 고창군 상하면의 한 마을에서 고모할머니 김모(85)씨의 얼굴과 목을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혼자 사는 김씨는 "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할머니를 발견한 마을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고, 김씨는 마을회관 인근에서 체포됐다.

하루 전 대전에서는 어머니와 이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A(19)군은 21일 오후 4시 34분께 대전시 유성구의 한 아파트에서 흉기로 어머니(52)와 이모(60)를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아파트에는 A군의 미국인 아버지도 함께 있었지만 방 안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 화를 면했다.

경찰 조사에서 A군이 이달 중순부터 마약 성분이 든 약물을 복용하고서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는 가족 진술이 나왔다.

지난 5월 울산에서는 욕설했다는 이유로 손아래 동서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50대 남성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울산지법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서로부터 욕설을 듣고 감정이 격해져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충북 제천에서는 인터넷 도박에 빠져 많은 빚을 진 20대 남성은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와 여동생을 살해했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범죄(존속살해·상해·폭행)는 2012년 1천36건, 2013년 1천141건, 2014년 1천206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 중 존속 살해는 2012년 50건, 2013년 49건, 2014년 60건, 지난해 55건이었으며 올해 8월 중순까지 벌써 전국에서 29건이 발생했다.

범행 대상이 고모할머니나 이모 등으로 확장했지만 여전히 존속범죄 피해자의 상당수는 길러준 부모다.

최근 인천에서는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으며 지난달 남양주에서도 70대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직계존속에만 해당되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될 경우 일반적인 살인죄보다 엄한 처벌을 받는다.

형법 제250조 2항은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일반 살인죄보다 처벌규정이 무겁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존속범죄의 상당수가 정신질환이나 경기불황에 따른 경제적인 문제 탓에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전통적인 가족 관계가 해체되고 가족 윤리마저 붕괴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가정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조정하는 능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며 "여기에 최근 정신질환자의 범죄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 이기주의가 가족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오히려 남보다 못한 가족이 많아졌다"며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며 쌓인 앙금이 말 한마디로 폭발하는 경우 존속범죄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족 간 갈등에 외부인이 개입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가족 윤리와 도덕성 회복을 지적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 간 범죄는 112신고가 접수되기 전 미리 예방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사회 전반적인 윤리 의식이 개선돼야 존속 범죄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호, 김근주, 김형우, 임채두, 손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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