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기강 해이·복지부동'도를 넘는 수준, 여기저기서 "나라 어수선, 일할 맛 안난다" 손놔

[뉴스포커스]

11시30분에 점심 먹고 낮잠…"야근 줄고 분위기 붕 떠 있어"

장관들도 눈치보며 人事 주저, 차기정부 염두에 승진도 꺼려

뒤늦은'기강잡기'안먹혀, "정책 지체등 피해는 전부 국민 몫"

 22일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있는 정부세종청사 6동. 낮 12시부터가 점심시간인데 오전 11시 30분이 되자 공무원 수십 명이 쏟아져 나와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일찌감치 점심을 해결한 공무원들은 12시쯤 청사로 돌아와 낮잠을 즐겼다. 또 일부 공무원은 느긋하게 점심을 즐긴 후 오후 1시 40분이 되어서야 청사로 복귀했다.

 ◇무사 안일 '임시 정부'상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이후 정부 관료 조직의 기강 해이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끄는'임시 정부'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문에 따르면 이르더라도 4~5개월 뒤에야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는 전망에 따라 일선 공무원들은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무사안일한 근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전국 도처에서 창궐하고 있는 AI(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대응이 너무 늦고,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한·중 관계 경색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해도 해당 부처에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이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이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무기한 연기된 것을 비롯해 주요 정책 추진도 지체되고 있다. 세종청사의 한 국장급 관료는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야근하는 사람이 확실히 줄었다"며 "연말 분위기까지 겹쳐 정부가 붕 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리더십 공백, 국정 표류

 하지만 야당의 견제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인사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어 채찍을 가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각 부처 장관들도 안팎의 눈치를 보며 인사권 행사를 주저하면서 공무원들의 근무 기강 해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리더십이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되면서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는 뜻이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5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할 가능성이 커지자, 요즘 관가(官街)는 "나사가 완전히 풀렸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기강 해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저기서 "나라가 어수선하니 일할 맛 안난다"는 푸념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관료라면 늘 승진을 꿈꾸지만 요즘은 예외다. 최순실 게이트로 간부들이 무더기로 사직한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1급 간부가 넷이나 공석(空席)이다. 하지만 국장급들이 승진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색채가 강해져 다음 정부에서 자리 보전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까지 더 악화 우려 

 사실상 '식물 정부'상태는 탄핵안에 대한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몇 달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12월 들어 학령기 독감 의심 환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은 보건 당국의 늑장 대응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정책 발표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 연내 발표하기로 했던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안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준비가 1년 이상 필요한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은 발표 예정 시기가 내년 여름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아직 시동도 걸지 못하고 있다.

 보다 못한 국무조정실은 22일 44개 행정기관 감사관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불확실한 국정 상황을 틈탄 공직자의 복무 위반, 복지부동 행태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기강 잡기에 나섰다. 국무조정실은 연말연시 암행 감찰 활동 등을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군기 잡기'가 제대로 먹힐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