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문재인 '인생 역정' 운명 가른 5번의 변곡점


재수 끝에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 사시도 두번에 합격
노무현 때문에 떠난 정치, 노무현 때문에 다시 돌아와
박근혜에 뼈아픈 패배 딛고 촛불 대선' 승리 靑 입성


 "돌아보면 운명 같은 것이 지금의 자리로 나를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펴낸 자전 에세이 '문재인의 운명'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운명처럼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던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를 딛고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동아일보는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실향민인 아버지 문용형 씨(작고)와 어머니 강한옥 씨(90)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난 문 대통령의 '운명'엔 다섯 개의 변곡점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노무현

 매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971년 경남고를 졸업한 후 재수 끝에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전액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들어간 그는 사법시험도 한차례 재수한 끝에 1980년 차석으로 합격했다. 당시 시위 참가로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돼 있다가 사시 2차 합격소식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 조영래 변호사·박원순 서울시장·박시환 대법관·송두환 헌법재판관·고승덕 변호사 등 쟁쟁한 동기들이 즐비했지만, 사법연수원 12기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졸업후 문 대통령은 판사를 희망했지만 유신반대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그리곤 대형로펌 스카우트를 거절하고 부산행을 택했다. 억울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사시 동기인 박정규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소개로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그걸 계기로,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이후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가 만들어졌다. 여섯 살 차이지만 서로 말을 놓지 않았던 두 사람은 14년의 차이를 두고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운명이었다.

 ○청와대 '왕수석'

 2003년 1월 당선자 신분이던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던 문 대통령을 서울로 불러 "민정수석을 맡아 달라"고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했다. 민정수석 두 차례,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면서'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참여정부 초기 시절 이빨을 무려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으나 업무시간 외에 직접 차를 몰고 비행기나 기차는 늘 일반석을 이용하는 등 관행화된 특혜를 철저히 내려놓았다. 그러나 과로에다 당의 총선 출마 요구를 거절한 데 대한 불편함이 커지자 민정수석을 1년도 못하고 물러났다. 그것도 운명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그리고 정계 입문

 "빨리 와주셔야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님이 산책 나갔다가 산에서 떨어지셨습니다."

 2009년 5월 문 대통령은 김경수 전 대통령연설기획비서관(현 국회의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인생의 경로가 또 소용돌이친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치렀다. 이후 친노 진영은 다시 결집했고, 그 중심에 문 대통령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그해 6월 "암울한 시대가 나를 정치로 불러냈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53%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운명이었다.

 ○새정치연합의 분당과 4·13총선

 대권 재도전의 첫 단계는 당 대표 출마였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2·8 전당대회에서 그는 현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혈투를 벌였다. 이후 친문(친문재인)과 비문(비문재인) 진영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결국 2015년 12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일부 비문 의원들은 탈당했다. 대선 패배 이후 두 번째 정치적 위기였다.

 이후 문 대통령은 김종인 전 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했고, 민주당은 4·13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선전했다. 하지만 김 전 대표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당을 떠났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당을 떠났다"는 '뺄셈의 정치'란 꼬리표는 문 대통령을 내내 따라다녔다. 운명이었다

 ○두 번째 대선 도전

 실정을 보고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제 역할을 못 하자 혁신을 기치로 2014년 문 대통령은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결국 당 대표에 선출돼 당내 쇄신을 주도했다. 그러나 친문 프레임을 뚫지 못하고 결국 안철수 후보가 탈당하는 분당 사태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김종인 전 대표를 영입하며 작년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두번째 대선 준비에 나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촛불민심과 함께했던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부상했다. 유세기간 내내 한 손에는 적폐청산을, 다른 한 손에는 통합의 깃발을 부여잡고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국민은 마침내 그의 손을 잡았다. 2008년 2월 25일 정권 2인자로 쓸쓸히 청와대 문을 나선 지 9년 2개월여 만에 1인자가 되어 그 문을 당당히 열어젖혔다.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