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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T, 지난달 별세'미즈 운동'선구자 마이클스 삶 조명 

"男에 속하지 않은 女 타이틀 찾고싶어" 1960년대 'Ms. 사용운동'
 여성잡지 '미즈'창간후 대중화, 美 정부 문서'Ms'사용 공식 승인
미국 넘어서 유럽까지 확산…"작지만 중대한 유산을 남겼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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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즈(Ms.)는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여성 호칭이다. 'Ms.'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건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 원래 남성(Mr.)과 달리 여성 호칭은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구분해 사용했다. 그러다 1960년대 'Ms. 사용운동'이 전개되면서 'Ms.'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미즈(Ms.)는 결혼 여부에 따라 여성을 지칭하는 미스(Miss.), 미시즈(Mrs.)를 대신해 결혼과 관계없이 여성을 부르는 용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지역신문 '더 선데이 리퍼블리칸'이 상황에 따라 쉽게 축약해 쓸 수 있는 호칭으로 '미즈'를 소개하면서다. 그러다 1960년대 'Ms. 사용운동'이 전개되면서 'Ms.'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Ms. 사용운동'을 이끈 여성 인권 운동가 실라 마이클스(Sheila Michaels)가 지난달 뉴욕 맨해튼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78세.

 6일 뉴욕타임스(NYT)는 마이클스가 백혈병으로 투병생활을 한 끝에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Ms.'의 사실상 창시자인 마이클스는 1939년 5월 8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라디오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생부와의 인연은 깊지 않았다. 다섯살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곧이어 엄마와 새아빠와 함께 살았다. 어릴적 이름은 실라 케슬러. 생부가 아닌 새 아빠의 성(姓)을 따랐다.

 마이클스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성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가족 때문이었다. 인권운동을 하며 1963년 애틀랜타에서 체포되자 어머니와 새 아빠는 그녀와 연을 끊었다. 새 아빠의 성 '케슬러'도 버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을 바꿔야 했고, 생부를 따라 '마이클스'라고 붙인 것이다.

 마이클스는 2007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속하지 않았다. 남자에게 속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타이틀'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전개한 운동이 'Ms. 사용운동'이다. 마침 미국의 1960년대는 여성 인권운동의 태동기였다. 

 'Ms'가 더 널리 알려진 건 1969년 마이클스가 뉴욕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였다. 그는 라디오 방송 도중 'Ms'를 언급했고, 발음을 묻는 DJ의 질문에 "미즈"라고 답했다.

 이후 탄력을 받은 'Ms. 사용운동'은 여성 인권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971년 '미즈'라는 여성 잡지를 창간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잡지 이름은 스타이넘이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미즈"라는 말을 듣고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잡지 '미즈'가 높은 인기를 누리면서 1972년 미 정부는 공식 문서에 'Ms'를 사용하는 것을 공식 승인했으며 이 단어는 북미 대륙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미즈'마이클스는 1980년대 한 일본인 셰프와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다. 유족으로는 이복남매 1명이 있다.

 NYT는 "마이클스는 작지만 중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는 두 개의 자음과 하나의 작은 점, 총 3개의 철자로 영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실라 마이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