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경영권 승계 위해 부정한 청탁-대가성 지원 이뤄졌다" 
삼성 "청탁-지원 없었고 이 부회장이 직접 관여·결정 안해"
법원, 진술·증언의 신빙성 및 증거 합치 여부 등 고심할 듯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이 박근혜·최순실씨 측에 뇌물을 건넨 혐의를 부인하거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책임이 없다고 진술한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이 법원의 유·무죄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삼성 관계자들은 전날부터 이날까지 열린 이 부회장의 피고인 신문을 전후해 주요 혐의인 뇌물공여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부정한 청탁' 및 '대가성 지원'이라는 구도를 깨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주장의 핵심은 ▲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최대 현안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관해 독대 등의 자리에서 '부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고 ▲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공모 관계인 최순실씨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위한 기금 출연이나 딸 정유라씨 승마에 대한 '대가성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최지성 전 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차장(사장) 등은 모두 '경영권 승계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달라고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 부회장은 3차례 이뤄진 박 전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서 경영권 승계는 물론 그룹 현안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고,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도 '독대 자리에서 그런 말이 오갔다는 얘기를 이 부회장에게서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정유라 승마 지원은 최순실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을 모함할까 우려한 최 전 실장의 지시로 이뤄졌을 뿐, 이 부회장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논리도 폈다.

또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이 이미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어서 대통령에게 청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최씨 측에 뇌물을 건넸다는 특검 주장과 배치된다.

이 부회장의 주장은 '아니다, 모른다, 그런 적 없었다'는 취지로 요약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고, 합병을 추진한 미래전략실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정씨를 지원한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관건은 이런 주장들을 재판부가 얼마나 인정할지 여부다.

피고인 신문은 재판에 넘겨진 당사자가 본인의 혐의에 관해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쳐놓는 절차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 등 여타 관계자 재판에서는 직접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고 본인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재판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절차인 피고인 신문을 '혐의 소명'의 기회로 활용해 주요 쟁점에 관해 상세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특검 주장을 반박했다.

큰 줄기는 특검의 뇌물 논리를 깨려는 데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공범 최순실씨에게 433억원 상당(미르·K재단 출연금 204억원 포함)의 뇌물을 제공하거나 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박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정유라씨 쪽에 제공된 금액은 강요 내지 강요 수준의 압박에 따른 것일 뿐 뇌물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정유라 승마 지원의 경우 아예 정씨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뇌물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폈다.

특검이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와 관련해서도 특검 측 공소사실과 같은 현안 언급 등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삼성 합병이나 재단 지원 등에 관여한 그룹 미래전략실 업무, 정유라 지원에는 이 부회장이 관여하지 않았고 최지성 전 실장이나 각 계열사 사장 등이 독자적으로 결정했으며 자신이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반면 특검은 삼성그룹이 미전실을 중심으로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이 차질 없이 경영권 승계를 할 수 있도록 계열사 합병, 지주사 전환 등 각종 시나리오를 짜서 실행에 옮겼고 이 부회장은 이를 알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이를 청탁했고 그 대가로 최순실·정유라를 지원했다는 공소사실을 거듭 강조하며 공세를 폈다.

결국, 재판부가 어느 쪽 답변이 더 신빙성 있는지, 증거로 뒷받침되는지 판단하는 데 달렸다. 특검 조사 단계에서 나오지 않았던 얘기나 일부 진술이 뒤바뀐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도 변수다.

예를 들어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과 독대 자리에서 대한승마협회를 지원해달라는 요청 자체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특검 조사와 재판에서는 '대통령이 승마협회를 지원하라고 했으나 정유라를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진술을 번복한 이유를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장충기 전 차장도 특검 조사에서 '이 부회장이 3차 독대 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계획안을 받아왔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봉투는 내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신문 내용이나 증인들의 증언 등 여러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있는지, 각종 객관적 증거 자료와 부합하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따져 판단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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