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장 가족 쓰는 변기 뚫거나, 안방 전구 갈기 예사"

[뉴스포커스]

현지 행정직원들 신참 외교관 등이 주된 횡포 대상
한번 눈밖에 나면 불이익 뻔해…항명은 꿈도 못꿔 


 # 유럽 주재 한 재외공관. 이 공관에서 사무직 행정직원으로 일하는 C씨의 이달 '주요' 업무는 관광지로 가는 비행기 티켓 예매와 현지 맛집 물색이다. 공관장이 "우리 가족 휴가에 지장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는 '특명'을 내렸기 때문. 물론 호텔방 예약도 그의 몫.  C씨는 "내 휴가도 아닌데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자괴감도 들지만 공관장 지시를 거부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씁쓸해 했다. 

 한국의 육군 대장 부부가 공관병들을 자신들의 하인처럼 부렸다는 '갑질'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가운데 외교부 재외공관에서도 현지 행정직원과 신참 외교관 등이 공관장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일부 재외 공관의 하급 직원들은 "재외공관은 공관장의 왕국"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에 따르면 재외공관장들의 갑질 횡포 대상은 주로 계약직 행정직원들이다. 약자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오용하는 전형적인 갑질 형태이다. 

 공관에서 청소와 요리 등 허드렛일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지만 해당지역 외국어 능통자 위주로 선발하는 행정직원도 각종 잡일에 동원되기는 마찬가지다. 한 공관에 근무하는 행정직원 D씨는 "공관장 가족들이 쓰는 변기를 뚫거나 안방 전구를 갈아 끼우는 등 허드렛일 지시가 수시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E씨에 따르면 대사관에서 회식을 하면 행정직원들은 앉지도 못한 채 고기를 굽고 음식을 나르느라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해 자리가 파한 뒤에야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형편이다. 

 현지 교민에 대한 갑질 논란도 있다. 홍콩한인회는 김광동 홍콩총영사가 3월 주최한 교민 간담회에서 민간인인 총영사 부인이 회의를 주도했다며 지난달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김 총영사가 간담회 자리에 있었음에도 부인이 외교관인 듯 "우리가 사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다. 탄원서는 총영사 부인을 '비선실세'에 비유하기도 했다.

재외공관에선 통상 3년 차 이상의 막내 외교관이 20, 30년 경력의 공관장을 보좌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공관 근무 3년여 내내 힘들어져 항명은 어려운 구조다.

 한 행정직원은 "연말에 상호 평가가 있지만 공관장에게 불리한 말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편 7일 문재인 대통령은 모든 부처 차원에서 갑질 문화를 점검할 것을 각 부처 장관에게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