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정부 검증으로도 위해성 평가 어려워…사태 장기화 우려 
전문가 "지나친 걱정말고 신체 이상시 전문의와 상담할 것"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안홍석 김은경 기자 = 생리대 안전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여성환경연대의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시험'이 정부와 단체의 진실 공방과 책임 떠넘기기 양상으로 번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만 키우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문가들의 판단을 빌어 시험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힌 데 대해 여성환경연대는 "식약처가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며 시험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확실하지 않은 사실로 논란이 증폭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지나치게 우려하지 말고 이상 증세가 있으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 식약처-여성환경연대 '시험 신뢰성' 놓고 충돌

식약처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검증위)는 30일 여성환경연대에서 제공한 김만구 교수 연구팀의 시험 결과를 공개하면서 "상세한 시험방법 및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상호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아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검증위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시험은 전 세계적으로 레퍼런스가 없고 검사법도 정립돼 있지 않다"며 "(여성환경연대의 시험은) 표준화되지 않은 방법을 자의적으로 쓴 데다가 결과의 오차범위도 너무 커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레퍼런스나 확실한 검사법이 없으니 시험에 여러 가지 조건과 가정이 들어가면서, 방법론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또 시험에서 제시한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은 검출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단순 합산한 것인데, 그 개념이나 계산법도 옳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검증위의 이런 지적에 대해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식약처는 우리가 한 것과 같은 검출시험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도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단정 짓고 있다"며 "이는 시험을 폄하하려는 의도"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실험을 진행한) 김만구 교수는 공신력 있는 국제인증 기관 위원"이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측을) 무고로 고소하는 등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소비자 "어쩌라는 것이냐"…불신 갈수록 증폭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혼란과 불만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릴리안을 사용한 후 생리 양이 줄었다는 김모(36·여)씨는 "여성 건강과 직결된 문제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식약처 조사도 너무 늦는데 관심이 식을 때쯤 조용히 발표하고 끝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분노했다.

이모(34·여)씨도 "여성환경연대가 시험한 생리대 중 릴리안 제품 하나만 공개되고 유해물질이 더 많이 검출됐다는 다른 제품들은 공개되지 않는 것이 어이가 없다"며 "식약처는 여성환경연대 연구 결과가 신뢰도가 낮다는 식으로 얘기하면서도 어떤 제품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는 건지는 설명도 없으니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이씨는 "여성으로서는 한달에 한번 생리대를 꼭 써야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리하는 여성이 있을 텐데 다들 이 제품은 괜찮은 건지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라며 "유해물질이 나온 브랜드명을 다 공개하든가 어떤 제품을 사용해야 할지 기준이라도 정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릴리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네이버 카페의 회원 수는 2만9천명을 돌파했다.

1차 접수 때 집단소송에 참여한 회원 수는 수천명에 이른 바 있다.

손해배상 청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법정원은 이날까지 2차 접수를 마감하고 곧 3차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 내달 정부 검증도 어려울 듯…전문가 "지나친 걱정하지 말 것"

지난해 10월부터 휘발성유기화합물을 포함한 104종의 유해물질에 대한 검출법과 검출량, 위해성 등을 연구해 온 식약처는 우선 다음 달까지 현재 국내 유통 중인 전 제품을 상대로 위해도가 높은 휘발성유기화합물 10종을 중심으로 검출 여부와 검출량을 조사하기로 했다.

위해성 평가와 품질 기준을 포함한 종합적인 연구 결과는 애초 내년 10월까지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최대한 앞당겨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검출된 화학물질의 위해성을 검증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검증위에 참석했던 전문가는 "생리대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는 문제가 처음 제기된 미국에서도 아직 논문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생리대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면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방법론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은 말 그대로 휘발성이기 때문에 호흡기로 흡수될 수 있는 물질인데 이것이 피부 점막으로도 흡수될 수 있는지, 검출된 미량이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인지, 미량의 유해물질이 누적되는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량의 물질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논란이 증폭되고 불안을 확산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식약처의 대책 회의에 참석한 다른 전문가도 "생리대에서 나오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지나치게 우려하지 말고, 생리통이 심해지고 생리주기가 변하면 우선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mi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