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트럼프-틸러슨, 또다시 불화 노출…외교 좋지만 협상조건 있어야"
CNN "틸러슨·백악관 같은 생각인지 의문…맥매스터 발언이 실제 대북정책"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파격 발언을 놓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 균열과 파장을 우려했다.

틸러슨 장관이 전날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등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백악관의 시각과는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백악관 관료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독려한 상황에서 나온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동맹국들 사이에서 혼란을 싹트게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 직후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고 성명을 낸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NYT는 평가했다.

신문은 이 성명을 "말하자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계속 이웃 나라들을 협박한다면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백악관이 틸러슨 장관의 발언으로부터 거리를 두기까지는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틸러슨 장관이 다시 한 번 북핵 해법을 놓고 이견을 노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말 중국을 방문한 틸러슨 장관이 북한과의 대화 노력을 공개하자 트위터를 통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당시와 달리 이번 논란은 백악관이 국무장관을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교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불거졌다는 점에 NYT는 주목했다.

그럼에도 틸러슨 장관이 전날 파격적인 대화 제안을 한 것은 그가 현 정부 들어 북한과 대치하는 내내 견지한 "외교관은 더 온건한 노선을 제시한다"는 역할을 한 것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틸러슨 장관이 대북 협상의 긴급성을 시사한 것은 북한의 거듭되는 핵·미사일 시험을 고려할 때 '조만간 협상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백악관의 관점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복수의 관료들이 NYT에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틸러슨 장관이 외교 노력을 강조한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협상에서도 조건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러셀은 "협상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과 북한의 조건을 수용하는 것 사이에는 절충점이 있다"며 "북한의 협상 조건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CNN 방송은 틸러슨의 '무조건 대화' 발언에 백악관과 국무부가 '미국은 아직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로 진화를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한 대변인은 CNN에 "북한은 먼저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진지하고 의미있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시험발사를 고려하면 지금은 분명히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틸러슨 장관과 백악관이 과연 북핵 문제에 대해 같은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에반 메데이로스 전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국무부와 백악관은 대북 협상과 같은 현안에 대해서는 보조를 맞춰야 한다"면서 "만약 백악관이 틸러슨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틸러슨이 대화 시작이라는 방향으로 백악관을 몰고가려는 시도를 한다는 뜻이거나, 틸러슨이 조건 없는 대화의 불리한 면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한, 틸러슨 장관보다는 같은 날 허버트 맥매스터 NSC 보좌관의 "북한과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의 실제 대북 정책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다고 CNN은 전했다. 경질설에 휩싸인 틸러슨 장관은 정책 결정과정의 주변부로 이미 밀려났다는 것이다.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부교수는 "굿캅-배드캅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양쪽이 다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틸러슨의 무게감과 신뢰성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구심이 있다"면서 "맥매스터는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firstcirc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