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협상론 힘 실릴 가능성…정부 '피해자의견·한일관계 영향' 두루 고려키로
日외무상 "합의변경하려하면 한일관계 관리 불가" 강경 입장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일위안부 합의 검토 TF(태스크포스)가 27일 발표한 보고서에는 합의의 총체적 문제점들이 드러나 위안부합의의 운명은 물론 한일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보고서는 합의에 국내외 소녀상, 위안부 표현, 위안부 관련 단체 설득 등을 둘러싼 '비공개 부분'이 있었다며 한일 간에 사실상 이면합의로 볼 수 있는 '비공개 합의'의 존재를 인정했고, 피해자와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위안부 합의는 나온지 2주년을 맞아 중대 기로에 섰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의 대(對) 언론 발표 형태로 나온 위안부 합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일본 외무상은 일본의 현직 정상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대신 표명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심적 상처 치유 사업을 하는 재단을 설립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했다.

이 합의가 이행되면서 27일 현재 생존 피해자 47명 중 36명(약 77%)과 사망 피해자 199명의 유가족 68명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을 통해 치유금을 수령했다.

그러나 합의 2년이 경과한 상황에서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피해자 지원과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등 과거 위안부 해법에 비해 진전된 측면은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으며, 문제점은 더욱 도드라진 형국이다.

이와 관련, 위안부합의의 당사자인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자신의 이름으로 낸 논평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의 복합성과 합의의 본질적·핵심적 측면보다는 절차적·감성적 요소에 중점을 둠으로써 합의를 전체로서 균형 있게 평가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부는 이번 TF 검토 보고서 발표에 따라 위안부합의에 대한 입장을 정함에 있어 '인권'과 '한일관계'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 추를 둘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될 전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반대 응답이 70% 안팎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보고서 내용만 보면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추진하자는 목소리에 힘을 실을 공산이 커 보인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재협상 추진을 공약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사안의 본질이 인권 침해임을 강조하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줄곧 강조해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재협상 절대 불가'를 외치면서 합의의 유지 여부를 문재인 정부 대일 기조의 바로미터로 여기고 있는 상황은 정부에 고민을 안긴다.

즉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하려 해도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 향후 북핵 등 문제에서 협력하기 위해 한일관계를 관리해야 할 필요성 등을 두루 검토해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TF의 검증 결과 발표후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가 합의를 변경하려 한다면 한일관계가 관리 불가능하게 된다"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합의 변경 요구가 있어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고노 외무상은 "한일간 위안부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을 확인하고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혔으며, 같은 날 양국 정상도 전화 통화에서 합의했다"고 한측의 합의이행을 재차 강조했다.

정부는 일단 피해자 의견과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동시에 고려해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강경화 장관은 "정부는 TF 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피해자 중심 접근'에 충실하게 피해자 관련 단체 및 전문가 의견을 겸허히 수렴해 나가고자 한다"며 "아울러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도 감안하면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정부 입장을 신중히 수립해 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합의 이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만 되뇐 일본 정부의 태도에 비춰볼 때 합의에 반대했던 피해자들의 생각이 쉽게 변할 가능성이 작다는 점에서 정부는 결국 인권과 한일관계의 양 갈래 길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전망이다.

외교가는 정부가 어느 쪽으로 선택하더라도 파장이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실상의 이면합의를 포함한 한일간의 협상 경과가 소상히 공개됨에 따라 국내에서 뿐 아니라 일본의 반발도 예상된다.

통상의 외교문서는 30년 후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에 외교문서를 전문 그대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한일간에 비공개한 내용과 비공개 협상 경위 등을 공개한 것은 협상 상대방인 일본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퇴역 외교관들은 상대방과의 신의를 깬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으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 행보에도 제약이 우려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앞서 2014년 일본 아베 내각은 위안부 제도에 일본군과 관헌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1993년)를 검증하면서 한일간의 외교협의 경과를 상세히 공개해 한국의 큰 반발을 산 바 있다.

일본 측은 당시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발표 후 담화를 계승했지만, 외교협상 과정을 소상히 공개함으로써 고노담화가 한일 간 물밑에서 이뤄진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자국민에게 심어 담화에 흠집을 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