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대검 조사…추가 성폭력 적발 여부 관심
안태근은 '친고죄' 고소기간 넘어 처벌 힘들 듯…해임돼 감찰도 불가능
"잊지 못할 밤 만들어 줄테니 나랑 자자" 추가 성폭력 사례도 제시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법무부 고위간부의 여검사 성추행 의혹이 사회적인 파문으로 확산하고 있다. 법무부와 대검이 진상조사에 나선 가운데 검찰이 이번 일을 계기로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쇄신할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나서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우리나라에서도 각 분야에서 이어지는 계기가 질지 관심을 끈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장 권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가 남아있다는 지적을 받는 법조계에서 불거져 조사 및 처리 과정에 각계의 관심이 높다.

◇ 법무부·대검찰청 전면 조사 착수

30일 법무부와 대검은 전날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전날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e-Pros)에 폭로한 데 이어 방송 인터뷰에도 제기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조사를 공식화했다.

서 검사는 사건 당시인 2010년 10월 30일 상황을 내부 게시판에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사건에 뒤이은 사무감사와 인사 조처 역시 부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감사 지적사항과 인사 조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법무부와 대검 감찰본부는 서 검사의 증언을 토대로 성추행 의혹 당시의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한편 서 검사에게 내려진 사무감사의 지적사항이 적절했는지도 함께 따져볼 방침이다.

서 검사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전 검사장은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맞는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무감사나 인사 조처로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부당한 인사 조처에 관여했다고 서 검사가 주장한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법무부 검찰국장)도 의혹에 반박하고 있다. 그는 30일 오전 성추행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전혀 알지 못하는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임은정 검사가 당시 모 검사장에게 호출돼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시느냐"는 호통을 들었으며, 해당 검사장은 최 의원이라고 확인해 논란만 키운 셈이 됐다.

서 검사는 29일부터 2월2일까지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고 있으며 이어서 두달간 병가를 낼 것으로 전해졌다.

◇ 검찰 조직문화 수술대 오르나

이번 사안은 위계서열이 강조되고 폐쇄적인 검찰의 조직문화가 배경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검찰이 조사를 계기로 조직문화 혁신에 나설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기관의 속성상 내부 비위가 드러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모든 검사를 꼭대기인 검찰총장에서부터 맨 하위 검사까지 일렬로 세울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조직문화는 위계적이다.

심지어 과거 검찰청법에 '검사동일체 원칙'이 규정돼 철저한 상명하복을 요구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2003년 법을 개정해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관계'로 완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경직된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조직문화에서는 상관 등의 성추행 의혹이 있어도 수사나 감찰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서 검사가 폭로한 의혹은 발생 시기가 2010년이고, 임은정 검사 등 동료들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지만,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채 7년 넘게 묻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검찰 내에 성범죄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아 작년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2012년 이후 성비위로 인한 부처별 징계현황'에 따르면 법무부와 대검 소속 공무원의 성비위 징계 건수는 2012년∼2016년 5년간 34건에 달했다.

2016년의 경우 법무부·대검 공무원 10명이 성비위로 징계를 받았으며 이 중 6명이 성희롱이었다.

법무부와 검찰은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해 조사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출근길에 "직장 내에서 양성이 평등하게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재발방지를 위해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 인사불이익 처벌하나…성추행 추가 의혹 밝혀지면 처벌 가능

인사불이익 의혹이 조사에서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 처벌이 뒤따를 가능성이 점쳐진다.

업무 실적 등에 근거하지 않은 부당한 인사가 확인될 경우 관련자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죄는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처벌이 가능하다.

서 검사가 폭로 글 말미에 자신 외에도 조직 내에서 다른 성추행 피해자들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부분도 대검과 법무부가 진상을 파악 중이다.

서 검사는 선배 검사의 강제 포옹이나 성추행 발언 등 자신이 경험했거나 전해들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폭력 사례를 일기형 식으로 추가로 적었다.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줄테니 나랑 자자'는 선배 검사와 노래방 회식에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탬버린을 흔든 자신에게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는 부장검사의 성희롱 발언에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래 입술을 깨 무는 것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여성은 남성의 50프로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부장의 말에 '새겨들어'라며 고개를 끄덕인 선배, '너는 여자애가 무슨 발목이 그렇게 굵냐, 여자는 자고로 발목이 가늘어야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고 술이 취해 툭하면 머리나 어깨를 때려대던 선배 검사의 사례도 들었다.

또 회식자리에서 여검사의 손을 주무러대던 부장검사, '너는 안 외롭냐? 나는 외롭다. 나 요즘 자꾸 네가 이뻐 보여 큰일이다'라고 성희롱한 유부남 선배 검사, '누나 저 너무 외로워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저 한번 안아줘야 차에서 내릴 거예요'라던 유부남 후배검사 등의 사례도 제시됐다.

다만 별다른 설명없이 소설형식으로 제시된 이 사례들이 서 검사가 실제로 겪은 것인지, 다른 여검사의 사례를 전해들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가 특정되고 사실관계가 맞는 것으로 확인되면 감찰은 물론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피해 사례가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1월 이후의 사건이면 고소 여부와 상관없이 기소가 가능하다.

다만 사태의 중심에 선 안 전 검사장에 대한 처벌이나 검찰 징계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의혹사건 발생 후 6개월이 이미 지나 피해자가 더는 고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진 2010년 10월 30일에는 성추행죄가 친고죄로 규정돼 피해자가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하다. 2013년 1월 성추행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이 폐지됐지만, 행위시 법을 적용하는 게 원칙이므로 이 사건에는 소급적용될 수 없다.

또 안 전 국장은 지난해 '최순실게이트' 수사팀에게 부적절한 격려금을 지급했다는 '돈봉투 파문'으로 면직된 상태이기 때문에 감찰 대상이 아니다. 공무원법상 징계 시효 3년이 이미 지나 징계처분 가능성도 없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이라고 해도 여러 제약 때문에 안 전 검사장을 처벌하거나 징계할 수 없겠지만, 피해자가 더는 없어야 한다는 게 서 검사의 뜻이므로 검찰이 어떻게 대처하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