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나이 낮춰 말하지 않으셨나요?"

"나이보다 젊은 외모, 환갑 받아들이기 힘들어" 얼버무리기 십상
40·50대 절반'내 나이는 30·40대' 60대는 40%, '나이 혼란'겪어
'사회·경제적으로 쓸모 없게 되는 존재'라는 사회 인식에 반발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황모(61)씨는 자신의 사회적 나이가 '오십대 언저리'라고 했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오십 조금 넘었다"고 답하기 때문이다. 수년간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있는 황씨에게 나이가 환갑을 넘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게다가 나이를 솔직하게 말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예전엔 환갑이면 노인으로 여겼지만 요즈음 과거 40~50대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며 "또 괜히 환갑 넘었다고 나이를 말하는 순간 '그렇게 나이가 많은 줄 몰랐다'며 어색해지는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나이가 문제다. 그것도 중년 나이가 문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40~60대 중년은 각자 나이를 놓고 혼란스럽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나이를 한번쯤은 속이기 마련이다.

한국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은 중년을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정의한다. 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이를 속이는 나이'의 저자 패트리샤 코헨에 따르면 '중년'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전에 오른 것이 1895년이었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50대 초반에 불과할 때는 '청년기'와 '노년기'로만 인생의 단계가 나뉘었는데, 그 틈에 언제부턴가 갑자기 중년이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코헨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40살에서 64살에 걸친 중년층이 미국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국가 순가치의 70% 가량을 점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평균 수명이 늘고 건강 상태가 좋아지면서 이제 중년은 청년기와 노년기 보다 덩치가 더 커지며 나이에 대한 고정 관념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조선일보가 한국 내 남녀 122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중년 즈음부터 나이 혼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응답자(208명) 중 53.85%가 '내 나이는 30대'라고 생각했고, 20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9.13%에 달했다. 50대 응답자(204명) 중 47.06%가 자신을 40대로 생각했고, 30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20.1%나 됐다. 60대 응답자(200명) 중에서는 37%가 자신을 50대라고 생각했다.

나이 혼란과 나이 속이기는 중년층이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좀 더 젊은 몸과 건강을 위해 헬스장을 찾는 중년층이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현상으로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아재'나 '아지매'로 불리지 않기 위해 나이를 가름할 수 없는 패션 주 소비층으로 중년이 부상한 지 오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형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이 같은 중년의 나이 속이기의 이면에는 나이가 들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게 되는 존재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일종의 나이차별이다.

40~50대가 트로트 대신 아이돌그룹의 춤이나 랩을 배우기도 하고 60대 이상은 노래와 춤을 배우는 강좌에 몰리는 이유는 바로 나이차별을 거부하는 반발작용인 셈이다.

중년의 나이 속이기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또 다른 나이차별이란 묘한 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중년들의 반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