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2명 시민평화법정 참석차 방한…진상규명·사과 촉구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이 자리에서 묻습니다. 왜 한국군은 여성과 어린아이뿐이었던 우리 가족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나요. 어째서 집까지 모조리 불태우고 시신마저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인가요"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와 국회시민정치포럼 주최로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응우옌티탄(58·여)씨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 출신인 응우옌티탄과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60·여), 이름이 같은 두 명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는 21∼22일 서울에서 열리는 시민평화법정에서 증언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시민법정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한국군으로부터 상해를 입은 베트남인 2명이 원고가 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종의 모의 법정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재판장을 맡아 이끈다.

퐁니 마을 출신의 응우옌티탄 씨는 "당시 8살이었던 나는 한국군의 학살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까지 모두 5명의 가족을 잃었다. 나 또한 배에 총상을 입었지만, 남동생이 핏물을 토해낼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응우옌티탄 씨는 마치 어제 일처럼 그날의 두려움을 생생히 기억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남은 가족이 없다는 사실에 "왜 나까지 죽이지 않았을까 원망했다.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잔인한 학살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서 "다른 피해자, 유가족들을 대신해서 묻는다. 한국군은 왜 잘못을 저질러놓고 어떤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이냐"고 울먹였다.

이어 "학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의 소임이라 생각한다"며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증인이 돼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미 마을 출신의 응우옌티탄 씨 역시 "반세기가 지난 과거지만 잊히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방공호에서 수류탄이 터진 탓에 그는 가족을 잃었고 지금까지도 한쪽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때 엄마가 나를 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겨우 살았다"면서 "지금까지도 엄마와 동생이 죽어가면서 지르던 비명, 신음, 이런 것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겪었던 일을, 진실을 말하러 한국에 왔다. 한국 정부가, 한국 친구들이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서 베트남에 돌아가 잘하고 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두 사람은 21일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이뤄지는 시민평화법정에 증인으로 나선다. 법정에서는 퐁니·퐁넛 마을 사건에 참가한 참전군인의 영상과 증언 등을 검증하고 22일 최종 변론을 통해 판결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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