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선수의 수명은 계약서에 명시된 숫자와 문자에 의해 좌우된다. 대형 프리 에이전트(FA.자유계약선수) 계약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계약규모가 클수록 기회도 꾸준하다.

지난해 부활에 성공하고 올해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류현진(31·LA 다저스)의 목표점도 여기에 있다. 지난 겨울부터 수차례 2018시즌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다가오는 겨울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2012년 겨울 만큼이나 굵직한 결정을 해야한다. FA가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유니폼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에선 류현진처럼 FA를 앞둔 선수를 보다 철두철미하게 관찰한다. 같은 지구팀 스카우트는 물론 경우에 따라선 다른 리그팀의 스카우트도 경기장에 파견 돼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분석한다. 시즌 후 어느 팀이든 이적할 수 있기 때문에 영입리스트에 올리기 전부터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한다. 류현진도 마찬가지다. 최근 활약을 이어간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류현진을 관찰하는 스카우트가 늘어날 것이다.

다소 이르지만 FA 시장에 나온 류현진을 바라보면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일단 기량에 있어선 긍정적인 전망을 내릴 수 있다. 지난해 건강함을 증명했고 올해는 다저스 선발진을 이끌었던 2013, 2014시즌을 연상케할 정도로 공의 힘과 제구력이 향상됐다. 컷 패스트볼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있고 업그레이드를 꾀한 커브에 보다 효율적인 투구를 위한 투심 패스트볼까지 경기를 거듭할수록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메이저리그 진출 첫 해 포심 패스트볼(직구)과 체인지업 두 구종의 비중이 76.5%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세 가지 패스트볼을 던지는 류현진을 상대하는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고 나서야 류현진이 던진 구종이 무엇인지 인지한다. 직구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휘둘렀다가 컷 패스트볼이나 투심 패스트볼이 제대로 들어오면 허무하게 더그아웃을 향할 수밖에 없다. 최근 두 경기에서 류현진이 탈삼진 17개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구종의 다양화가 크게 작용했다.

문제는 FA 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일단 류현진과 같은 좌완 선발투수들이 유독 많다. 팀 동료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가 옵트아웃을 통해 FA가 될 확률이 높고 보스턴 좌완 선발투수 데이비드 프라이스도 옵트아웃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애리조나 선발진을 이끌고 있는 패트릭 코빈, 휴스턴의 댈러스 카이클, 위싱턴 지오 곤잘레스, 보스턴 드류 포머랜츠까지 좌완 선발투수가 넘쳐난다. 희소성에 따른 가치상승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다가오는 FA 시장에는 브라이스 하퍼, 매니 마차도, 조쉬 도널슨 등 특급 야수들도 줄줄이 나온다.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최근 10년 중 가장 거대한 FA 시장이 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장이 화려해도 구매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지난 겨울처럼 구단들이 지갑을 닫아 시장이 얼어붙을 경우 FA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될 게 분명하다.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와 제이크 아리에타(필라델피아) 같은 에이스 투수들도 계약을 마무리짓기까지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구단들은 과거처럼 맹목적으로 레이스를 벌이지 않는다. FA 시장은 더 이상 경매 시장이 아니다.

결국 올 시즌 류현진의 활약만큼이나 류현진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보라스는 FA 좌완 선발투수 중 카이클도 데리고 있다. 류현진과 카이클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전략을 세울 게 분명하다. 3개월 전 지갑을 닫은 구단들을 향해 독설을 날렸던 보라스가 올 겨울엔 반격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윤세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