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에서 재무 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의혹이 이슈가 되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열풍이 일 조짐이 나오는 가운데 이와 관련해 여당 50대 남성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망언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3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오사카(大阪)가 지역구인 자민당 소속 나가오 다카시(56·長尾敬) 중의원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야권 여성 의원들이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재무성 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검은 옷을 입고 '# 미투'라고 적힌 손푯말을 든 채 재무성을 항의 방문한 사진을 올렸다.

그는 이 사진과 함께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 성희롱과는 인연이 먼 분들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사진 속 의원들)에게 절대 성희롱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라고 적었다.

야권 여성 의원들의 외모를 비하하면서 성희롱을 용인하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큰 글을 올린 것이다.

나가오 의원의 이 글은 트위터상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런 발언 자체가 성희롱이다", "상대방을 골라서 성희롱을 하겠다는 선언인가", "(성희롱에 대해)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 이런 체질의 사람이다" 등의 비판글이 트위터에 쏟아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나가오 의원은 글을 삭제하고 사죄했지만 비판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제 발언 자체가 성희롱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인다"면서도 "국회 심의를 거부하고 같은 시간 '미투'를 호소하는 의원들의 모습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고 핑계를 댔다.

일본에서는 한국이나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미투' 열풍이 좀처럼 확산되지 않고 있다.

작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 씨가 방송 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기자회견을 열어 밝히는 용기를 냈고 이후 간헐적인 미투 선언이 이어졌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적다.

최근 후쿠다 준이치 재무성 차관이 여기자를 상대로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음성 파일이 공개되며 경질되면서 미투 열풍이 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성희롱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오히려 용기를 낸 피해 여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인터넷에서는 피해 여기자의 실명과 방송 출연 모습을 담은 사진이 퍼지며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 여기자를 비판하는 유명인사들의 트위터 글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지사는 "기자로서 자부심은 없는 것인가"라며 오히려 여기자를 비판했고, 극우 소설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 씨는 "일종의 허니 트랩(미인계)이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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