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불행하다'며 안락사 택한 104세 호주 과학자,

[생·각·뉴·스]

"생을 마칠 기회얻어 행복" 스스로 생 마감 희망
호주 안락사 허용 안해 스위스로 가서 10일 실행
합창'환희의 송가' 들으며 주사 밸브 스스로 열어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좋을 것 같다."

안락사(조력자살)를 결심하고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호주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104세·본지 5월2일자 보도) 박사가 10일 오후 평화롭게 생을 마쳤다.

그는 구달 박사는 이날 낮 12시 30분께 스위스 바젤의 라이프 사이클 클리닉이라는 기관에서 넴뷰탈과 신경안정제를 투여받고 그가 원하던 하늘나라로 떠났다.

구달 박사는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곡인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고 클리닉 측은 밝혔다.

영국에서 태어난 구달 박사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자리가 나자 호주로 이주해 102세 때까지 연구를 해왔다. 저명한 식물학자인 그는 초고령의 나이에도 컴퓨터를 직접 다루고, 4년 전까지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집념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최근 수년 동안 건강이 악화해 혼자 힘으로 생활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구달 박사는 평소 "질병은 없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것 같다"며 "104세라는 나이에 이르게 된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했던 2개월 전쯤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구달 박사는 호주에서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결정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호주는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빅토리아주만 지난해 안락사를 합법화했는데, 불치병에 걸려 6개월 미만의 시한부 선거가 내려진 이들만 대상이다.

결국 구달 박사는 스위스 행을 택했다. 스위스에선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상당 기간 조력 자살을 원한다는 의향을 밝히면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 2일 호주 퍼스를 떠나 스위스에 도착한 구달 박사는 죽기로 정한 날 이틀 전인 8일 CNN과의 대담에서 "운신하기가 어려워지고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한 5년~10년 전부터 사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 삶의 중심은 필드(야외) 연구에 있었는데 지금은 필드에 나갈 수가 없다"고 휠체어와 걷기 보장구에 의지하는 신세로 말한 뒤 "다시 숲 속으로 걸어가서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 나이면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그리고 점심까지 그저 앉아 있는다. 점심을 약간 든 뒤 또 앉아 있는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리고 "생을 마칠 기회를 얻게 돼 행복하다"며 "노인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도구로 내가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품위있게 죽을 권리"
vs
"생명경시 풍조 확산"


구달 박사의 안락사 선택으로 초고령화 사회에서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부여해야 하느냐가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이라며 노인의 조력 자살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안락사를 불허하고 있는 호주를 비판하기도했다. 하지만 호주 의료협회 등은 여전히 조력자살을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로 본다. 불치병에 걸리지 않은 이들의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면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할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