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대피로 터주고 환자 부축, 시내버스는 환자 2명 태워 신속 이송

(군산=연합뉴스) 최영수 임채두 정경재 기자 = "시민이 주점 밖으로 뛰쳐나온 환자들을 시내버스에 태우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갔어요. 전쟁통이 따로 없더라고요."

33명의 사상자를 낸 전북 군산 주점 방화 사건을 목격한 시민은 "시민의식이 환자들을 살렸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경찰과 소방관뿐 아니라 시민이 환자를 챙기고 시내버스로 환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증언이 속속 나왔다.

방화 용의자 이모(55)씨가 준비한 인화물질을 주점 입구에 뿌리고 불을 지른 시각은 17일 오후 9시 53분께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속속 화재 현장으로 도착할 시각, 메케한 연기를 맡은 손님들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주점 밖으로 뛰쳐나왔다.

일부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호흡 곤란으로 바닥에 주저앉거나 꼬꾸라졌다.

한 시민은 정신을 혼미한 환자를 업고 50m가량을 달려 연기가 없는 곳에 눕히고 숨을 쉬도록 했다.

구급대가 많은 인원을 한 번에 병원으로 옮기지 못하자 화재 현장에 몰려든 일부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 의식'이 발동했다.

화재를 두 눈으로 목격했다는 시민 A(27)씨는 "몸에 불이 붙은 용의자는 다친 상태에서도 도주했고 일부 시민들은 땅바닥에서 신음하는 환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에서 시내버스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A씨는 "어떻게 알고 그곳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버스 기사가 환자를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렸다"며 긴박했던 화재현장 속 시민의식을 추켜세웠다.

많은 환자가 이송된 군산의료원 관계자도 '환자를 태운 시내버스'를 떠올렸다.

이 관계자는 "병원으로 대형버스가 들어오더니 응급실 앞에 환자들을 내려주고 바로 사라졌다"며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참으로 의로운 행동을 한 것 같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소방당국도 시내버스 목격담을 털어놨다.

한 전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당시 인명구조 활동으로 바빠 경황이 없었는데, 화재현장을 목격한 버스 기사가 환자 이송을 자처했다"며 "주변 시민들이 환자들을 부축해 버스에 태웠다"고 말했다.

이 버스는 우성여객 운전기사 이혜성(60)씨가 운행한 16번 노선버스(전북 71자 2010)로 확인됐다.

이씨는 오후 10시쯤 시내 이성당에서 군산역 쪽으로 버스를 몰다가 화재현장 부근 도로에서 검은 연기를 봤다.

이때 교통경찰이 시내버스를 급히 세우더니 "위급한 상황이다. 도와달라"고 요청해 승객 2명을 내려준 뒤 곧바로 화재현장으로 달렸다.

이씨는 의식이 없는 남녀 1명과 보호자 2명을 버스에 태우고 30분 정도를 달려 군산의료원 응급실 앞에 내려줬다.

그는 "긴급한 상황에서 응급환자를 도와줘 뿌듯하다"며 "이런 상황이 있으면 기꺼이 달려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화재현장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비상구를 확보해 환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시민 4~5명은 화재건물에서 바로 옆 세차장을 지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비상구가 차량용 철제리프트로 막혀있자, 힘을 모아 이를 옆으로 간신히 밀쳐냈다.

이에 연기를 마식 비틀거리는 환자들이 이 비상구를 통해 바깥으로 가까스로 나갔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시민 진모(59)씨는 "메케한 연기를 사방을 뒤덮은 긴박한 상황에서 여럿이 함께 차량리프트 옆으로 밀어 비상구를 확보하자 환자들이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며 "이곳으로 많은 사람이 빠져나와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과 버스 운전기사의 기지와 협조로 30여명의 부상자들은 군산의료원과 동군산병원, 원광대병원 등으로 신속히 옮겨져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한편 방화 용의자 이씨는 범행 3시간 30분여 만에 군산시 중동 선배 집에서 은신해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외상값이 10만원인데 주점 주인이 20만원을 요구했다. 화가 나서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에게 방화치사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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