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0대, '오거스타' 골프장 그림으로 세상에 억울한 사정 알려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27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40대 미국 남성이 숨어 있던 그림 재능을 발휘, 부당한 자신의 사연을 세상에 알리면서 결국 풀려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남성의 무죄 방면은 그의 솜씨를 예사롭지 않게 본 교도관들의 역할이 컸으며, 진범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했기에 가능했다.

20일 BBC 방송에 따르면 발렌티노 딕슨(48)은 1991년 8월의 어느 날 밤 한 총격 사건에 휘말리면서 엄청난 불행에 휩싸이게 됐다.

당시 20대 초반의 딕슨은 한 소녀를 두고 말다툼을 벌이다 17살 청소년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딕슨은 당시 범죄 현장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총격이 벌어질 때는 근처 가게에 있었고 목격자들도 있다며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변호인은 위증죄 혐의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목격자 그 누구도 부르지 않았고, 어찌 된 일인지 담당 수사관도 법정에 나와 진술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살인 혐의가 인정돼 38년 형을 받았다. 딕슨은 이후에도 줄곧 결백을 주장했지만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악명 높은 교도소에서 거의 20년을 복역하던 중 그림에 대한 그의 재능이 교도관들 눈에 띄었다.

한 교도관이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12번 홀의 사진을 주며 그려달라고 요청한 것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딕슨은 당시를 회고하며 "교도소에 19년이나 갇혀 있던 처지에서, 골프 홀 모습은 내 마음을 움직였다"며 "평화로워 보였고, 골프 치는 것은 낚시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는 상상을 했다"라고 말했다.

딕슨은 골프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천연색 연필들을 이용해 12번 홀의 모습을 정교하고 멋지게 그려냈다.

그의 그림은 잡지 '골프 다이제스트' 편집진에게도 들어갔고, 결국 2012년 그 잡지에 그의 삶과 함께 그림이 실렸다.

다시 그 기사는 부당한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돕는 이들의 눈에 띄었고, 조지타운대 법대 학생들이 판결에 잘못이 있다며 돕고 나섰다.

이들 학생은 당시 검찰이 딕슨 옷가지에서 화약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딕슨 변호인 측에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더욱이 진범인 라마 스콧(46)이 총격 사건 수일 후 "내가 한 일로 내 친구(딕슨)가 혐의를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지역 언론에 범행 사실을 실토한 사실이 재조명됐다.

하지만 스콧의 이 말은 당시 피해자의 형제가 "딕슨이 총을 쏘는 것을 봤다"고 말하면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별개의 사건으로 현재 투옥된 스콧이 19일 자신이 당시 사건의 가해자라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딕슨은 수 시간 후 풀려났다.

스콧은 사건 이후 범행 사실을 10번 이상 고백했지만 검찰이 외면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딕슨이 풀려난 뒤에는 총격이나 살인 혐의는 벗었으나, 그가 당시 살인에 쓰인 무기를 제공했으며 활발한 마약 거래자였다는 주장을 폈다.

풀려나 법정을 나온 딕슨은 "세상 최고의 느낌"이라며 그림도 계속 그리고 언젠가 골프장에도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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