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성찬이 눈 앞에 차려졌지만 선뜻 손 대기가 꺼려진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박세리의 이름을 내건 '중도해지 OK 정기예금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21일부터 사흘 동안 경기도 용인 88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신지애(30)와 현재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박성현(25)이라는 두 거물급 스타가 출전해 시작전부터 골프팬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무대에서 두 스타를 모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여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두 스타가 KLPGA투어 대회에 나란히 출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지애는 지난 2010년 5월 한국인으로는 사상 처음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이후 두 차례 더 1위를 차지하는 등 모두 25주 동안 '넘버원'의 자리를 지켰다. 요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신지애는 이번 시즌에만 3승을 거둬 상금랭킹이 1위를 달리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박성현은 현역 세계랭킹 1위다. 지난해 잠깐 1위에 올랐다가 올해 다시 1위를 꿰찼고 5주째 최고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시원한 장타와 거침없는 '닥공' 스타일의 공격으로 가장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다. 올시즌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서니 팬들의 관심 또한 최고조다.
여기에 KLPGA투어 1인자 자리를 노리는 '빅3'인 상금랭킹 1위 오지현(22), 대상포인트 1위 최혜진(19), 평균타수 1위 이정은(22)이 모처럼 한 무대에 올라 대결하니 대회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대회 결과에 따라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 개인 타이틀 경쟁에 또 한 번 요동이 예상된다. 또 최근 가장 먼저 시즌 3승 고지를 밟으며 다승 1위에 오른 이소영(21)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아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한국여자골프의 진수를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흥행요소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는 개막 전부터 골프계 안팍으로 적지 않은 원성을 사고 있다. 정식 대회명이 올해부터 '중도해지 OK 정기예금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이라는, 정말 길고도 이해하기 힘든 이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대회명은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이었는데 후원사가 자사의 대표 상품을 대회명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다소 듣기 거북한 대회명이 탄생했다. 골프 대회가 아닌 대출상품을 연상시키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귀를 한번 의심해 볼 정도다. 후원사의 홍보도 중요하지만 부정적 어감의 수식어가 전설 박세리의 이름 앞에 여과없이 붙었다니, 골프계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골프계의 한 관계자는 "중도해지란 특정 상품명을 대회명으로 쓴다는 것은 지나칠 뿐더러 대회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골프영웅 박세리를 기리는 의미는 보이지 않고 상업성만 강조하는 것 같아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라면서 "골프인의 한 사람으로 박세리가 무시당하는 기분이라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감마저 든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대회를 신호탄으로 내년 KLPGA 투어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게 주객이 전도되면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골프팬들의 마음이 떠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지나친 기우일까.

유인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