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주요보직 거치며 승승장구…'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 위기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검찰이 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이른바 '엘리트 판사'의 추락을 지켜봐야 했던 법원 내부에서는 참담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박 전 대법관은 사법부 내에서 '야간고 출신 신화'로 불린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서울 환일고 야간부를 다니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사환으로 일하며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한 번 들은 내용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천재로 유명했다.

환일고가 배출한 첫 서울대 법대생인 박 전 대법관은 판사임용 후 뛰어난 재판능력을 인정받아 주요 보직을 담당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등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판사였다.

특히 법원행정처 송무국장과 사법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을 거치면서 특유의 기획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2011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에 임명됐고, 2014년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법원행정처장직을 맡게 됐다. 대법관 시절 내내 양 대법원장을 이을 차기 대법원장 후보 '0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고 전 대법관도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을 두루 경험한 엘리트 판사다. 사법행정에 밝아 건설국장과 차장 등 법원행정처 요직을 맡았다.

재판능력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그가 1991년 작성한 유성환 전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 면책특권 인정 판결은 근대사법 백년사의 100대 판결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과 사법행정 분야 모두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후배 판사들의 존경을 받은 두 전직 대법관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파헤쳐 온 검찰의 수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장 시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등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 위기를 맞았다.

박 전 대법관에 이어 법원행정처장을 맡은 고 전 대법관도 2016년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판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수사정보를 빼내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를 받는다.

사법부 최고 명예를 누리던 자리에서 재판개입과 법관 독립 침해라는 최악의 오명을 뒤집어쓸 처지에 놓인 두 전 대법관의 운명은 이번 주 영장심사에서 후배 판사들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