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단둘이 밥 먹지 않기, 비행기 옆자리 앉지 않기. 일대일 미팅 'NO'…

[이슈진단]

월가 등 금융권 "논란 거리 아예 차단하자"
새로운 성차별…승진 사다리 막힐라 우려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펜스룰'이 미국 금융권을 지배하고 있다.

남성은 여성과 단둘이 밥도 먹지 않고, 비행기 옆자리에는 앉지 않는다. 출장시 호텔을 예약할 땐 아예 다른 층을 잡고, 일대일 미팅도 기피하는 등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펜스룰(Pence Rule)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절대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여성과 관계를 차단하는 행동을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4일 블룸버그통신은 은행, 헤지펀드, 로펌 등 미 월가 경영진 30여명 이상을 인터뷰한 뒤 이같이 보도하며 보수적인 월가에 드리운 여성 기피 현상으로 여성들이 더욱 고립되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가가 '편집증'적으로 미투에 반응하는 데에는 사내 문제가 대중에 알려지는 걸 극심하게 경계하는 특유의 문화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타 매니저' 한 명이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해내는 만큼, 이들을 잃으면 회사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어서다.

블룸버그통신의 인터뷰에 응한 한 인프라투자 시니어 매니저는 "창문이 없는 방에서는 여성과 만나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에선 거리를 둔다"고 말했고, 사모펀드 임원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35세 미만의 여성과는 아예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로 여성들은 퇴근 후 간단한 모임에서도 배제되거나 남성 직원들과 교류가 아예 사라지고 있다. 남성 상사와 만날 때엔 회의실 문을 크게 열어놓거나 제3자가 동석하는 상황도 생긴다.

블룸버그통신은 가뜩이나 고위급으로 갈수록 남성 비중이 심한 월가에서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여성들이 직장 관계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직장 멘토를 잃는 등 승진 사다리가 막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기준 월가의 남녀 직급별 비중을 보면 신입사원급에선 여성 비중이 훨씬 높았지만 위로 갈수록 비중이 줄어든다. 매니저급은 37%, 시니어 매니저급은 26%이고, 경영진에선 여성 비중이 15%로 크게 낮다.

로펌 포드해리슨의 스티븐 츠바이크 변호사는 "남성들이 여성들과 단둘이 일하는 것을 기피하고 직장 멘토가 되는 걸 피하면, 성추행 문제는 피하겠지만 성차별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