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작업 대상' 기사 URL 전송…드루킹 "처리하겠습니다"
경공모 작성한 재벌개혁 보고서, 문재인 기조연설문에 반영
탁현민 임명·박성진 장관 후보자 때도 내부 기류 드루킹에 전달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는 자신과 드루킹의 관계를 '정치인과 단순 지지자'라고 주장했지만 수사기관이 확보한 객관적 증거들은 그 이상을 가리킨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 역시 전날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상호 도움을 주고받음과 동시에 상호 의존하는 특별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기사 주고받은 두 사람…재판부 "댓글 작업 상황 놓고 의사연락한 듯"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드루킹 김동원씨는 2016년 10월부터 김 지사와 관계가 단절된 이후인 2018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총 8만 건에 이르는 댓글 작업 기사 목록을 매일 전송했다.

그런데 기사 목록을 상대에게 보낸 건 드루킹만이 아니다.

증거들에 따르면 김 지사 역시 2016년 11월 무렵부터 2018년 1월까지 11차례(보좌관을 통해 보낸 기사 포함 13차례)에 걸쳐 뉴스 기사 등의 URL(인터넷 사이트 주소)을 보냈다.

<'주부 62% 비호감' 문재인, 여성 표심 '올인'>, <문재인 측 '치매설' 유포자 경찰에 수사 의뢰…"강력 대응">, <정부냐 중기냐 일자리 창출 주체 놓고 설전> 등이 해당 기사 제목이다. 이 같은 내용은 김씨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텔레그램 메신저 캡처 화면에서 드러났다.

드루킹은 김 지사가 이처럼 URL을 보내면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라거나 "처리하였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드루킹은 김 지사가 보낸 기사 URL을 경제적공진화모임 회원들 간의 텔레그램 방에 'A'나 'AAA', 'AAAAA'와 같은 표시를 붙여 띄웠다. 경공모 회원들은 "김경수가 보낸 기사니 우선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김 지사는 <정부냐 중기냐…> 제하의 기사를 드루킹에게 보내고 난 7분 뒤 드루킹에게 다시 "네이버 댓글은 이런 반응들인가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드루킹은 1시간 20분 뒤 김 지사에게 "시그널로 답변 드렸습니다"고 답을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김경수가 보낸 기사 댓글에 대한 작업 상황을 해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는 재판 과정에서 "드루킹에게 기사 URL을 보낸 건 다른 지지자들에게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으로서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경수가 드루킹에게 보낸 기사 중에는 당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관한 기사도 포함돼 있어 이를 단순히 지지자들에게 홍보하는 차원에서 보낸 기사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처리하겠습니다"라는 드루킹 말에 김 지사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 않은 것도 미심쩍게 봤다.

◇ 드루킹 일당 활동, 김경수 '비선 참모' 역할 방불

두 사람의 밀접한 공조 관계는 드루킹이 작성한 '재벌개혁 계획보고'가 당시 문재인 후보의 기조연설문에 반영된 것에서도 드러났다.

김 지사는 2017년 1월 5일 시그널 비밀대화방을 통해 드루킹에게 "재벌개혁 방안에 대한 자료를 러프(대략적)하게라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다음 주 10일에 발표 예정이신데 가능하면 그 전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포함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다음 날 두 사람은 국회 의원회관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났고, 이 자리에서 드루킹은 '공동체(경공모)를 통한 재벌개혁 계획보고'를 전달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1월 10일 문재인 당시 후보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재벌 적폐 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했다.

김 지사는 문 후보의 기조연설 발표 직후 시그널 비밀대화방을 통해 드루킹에게 기조연설문 전문을 전송하면서 "오늘 문대표님 기조연설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재판부는 이 대목에 대해 "당시 김경수는 문재인 후보의 기조연설문 발표에 대해 경공모 회원들의 반응을 물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 지사는 이에 대해서도 "지지자에게서 정책에 관한 의견을 청취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드루킹을 비롯한 경공모가 단순 지지세력 이상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2017년 3월 김 지사가 온라인에서 집중 비난의 대상이 됐을 때 드루킹 일당이 도와준 사례도 들었다. 문재인 후보가 선거캠프에 영입한 남인순 의원을 두고 젊은 남성들 사이에 '극렬 페미니스트'라는 반발이 있었는데, 김 지사가 문 후보의 입장을 대변하다 저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당시 드루킹은 경공모 회원들의 텔레그램 방에 "김 의원이 오유(오늘의 유머)에 올릴 사과문 초안입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오유 회원 여러분께, 김경수입니다"라는 사과문 초안을 전송했다.

그로부터 14분 뒤 오유 사이트에 드루킹이 회원들에게 보낸 것과 같은 내용의 사과문이 올라왔고, 회원들은 "직접 소통해주시는 모습 멋있습니다"라는 등의 댓글을 올려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꿔놨다.

드루킹은 김 지사의 당시 보좌관 한모씨의 부탁을 받고 탁현민 행정관 임명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응하는 댓글 작업도 벌였다. 이뿐 아니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성사시키기 위한 작업에도 나섰다.

당시 드루킹은 회원들에게 "광화문에서는 박성진이 날아가고 나면 민정수석하고 인사수석 둘 다 교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하네요"라고 전했는데, 재판부는 김 지사가 드루킹에게 이 같은 내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댓글 작업을 부탁한 것으로 봤다.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