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격 피의자ㆍ중국 달아난 공범 서로 "내가 안했다" 발뺌
집안서 벌어진 살인…현장 목격자 없어 진상규명 험로 예고

(안양=연합뉴스) 강영훈 류수현 기자 = 이른바 '청담동 주식 부자'로 불리는 이희진(33.수감중) 씨의 부모살해 사건에 가담한 피의자들이 "살해하지는 않았다"고 서로 핑퐁 하듯 책임을 떠넘기고 나섬에 따라 사건의 진상파악이 더욱 힘들어 지게 됐다.

유일하게 경찰에 붙잡힌 주범격 피의자 김모(34) 씨는 자신이 사건의 '설계자'임은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죄의 '실행자'는 중국동포 출신 공범 3명이라고 책임을 떠넘겨왔다.

그런데 사건 당일 중국으로 달아나 종적이 묘연했던 공범 중 한명이 자신의 국내 지인을 통해 주범격 피의자와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자신들이 살인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은 이씨 부모의 안양 아파트 집안이며, 살인을 행한 범죄자들 이외에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본 목격자는 없는 상태다. 따라서 서로 끝까지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경우,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마치 지난 1997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대학생이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상황과 오버랩된다.

당시 화장실 안에 있었던 두명의 용의자들은 서로 대학생을 찌른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겼고, 유력한 용의자 중 한명은 미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20년 가까이 진실이 가려지지 못했다.

다시 이희진씨 부모 사건으로 돌아오면, A 씨를 비롯한 공범 3명은 사건 당일 중국 칭다오로 출국해 신병 및 진술확보가 어려우리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경찰은 주변인 탐문조사를 통해 A 씨로부터 "우리는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위챗(중국 SNS) 메시지가 국내 지인에게 온 사실을 파악했다.

A 씨는 "경호 일을 하는 줄 알고 갔다가 일이 벌어졌다"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해 황급히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자신들은 주범격 피의자인 김씨에게 고용돼 일하려고 했을 뿐, 사건의 준비부터 실행까지에는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았다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는 김 씨의 지금껏 진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김 씨는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제압하려는데 저항이 심했고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공범 중 한명이 남성(이 씨의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여성(이 씨의 어머니)의 목을 졸랐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며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범의 주장과 달리 김 씨는 자신을 이번 사건의 '설계자'로 선을 그은 모양새다. 혐의가 가장 중한 '살인 행위'의 실행은 공범이 했다는 게 김 씨 주장의 핵심이다.

이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주장을 하면서 경찰 입장에선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찰은 양측의 진술과는 별개로 그간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내주 중 수사를 마무리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k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