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히 '소기의 성과' 자평…공세 지속하되 '출구전략' 모색할 듯
민주, 野 압박·추경협조 요청 병행…한국, 원내외 강경투쟁 속 퇴로도 고려
전문가 전망…"적절한 타협점 찾을 것" vs "당분간 협치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고상민 기자 = 패스트트랙 대치의 포연이 아직 가시지 않은 30일 국회에서 여야는 제각기 '다음 수순'을 고심하고 있다.

각 당 지도부는 내년 4·15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점을 염두에 두고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는 동시에 외연도 확장하는 필승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선거제·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동물 국회'를 불사하며 격렬하게 충돌한 여야는 대치정국 모드를 이어가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질주할지, 아니면 갈등을 수습하고 다시 마주 앉을지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원내 제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일단 패스트트랙 관철 또는 저지 여부를 승부를 달리하기는 했지만 이번 정국을 거치며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계기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온통 난장판이 돼 국민의 지탄을 받았지만, 여의도 정치권에선 그 누구도 지지 않는 싸움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저마다 밀릴 수 없다며 명운을 걸고 정국을 돌파해온 만큼 그 관성으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 동안 투쟁 모드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개회식도 열지 못하고 4월 임시국회를 통째로 날려버린 여야가 신속히 5월 임시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총선이 1년이나 남은 것은 민주당과 한국당 양쪽에 모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찬성하고 국회 폭력 사태를 우려하는 여론을 등에 업은 채 장외 투쟁을 벌이는 한국당을 '민생포기 정당'으로 규정, 대야 압박을 강화할 전망이다.

다만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처리하고, 민생경제 법안을 통과시켜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여당으로선 우선 야당을 국회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인 총선 전략일 수 있다.

민주당이 다음 달 8일 차기 원내대표 선출을 변곡점으로 한국당 등 야당과의 협상 재개를 시도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또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나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국회 정상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한국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다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거듭 강조해온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에 대한 3차 고발을 늦추며 김을 빼는 분위기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제1야당의 선명성을 드러내며 보수층 결집에 성공했다고 보고, 이 기세를 내년 총선까지 몰아붙이겠다는 태세다.

패스트트랙이 지정되자 "국민을 위한 정의의 횃불을 들겠다"(황교안 대표), "20대 국회는 없다"(나경원 원내대표) 등 초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한국당은 주말 광화문 장외 집회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전국을 권역별로 순회하며 선전전을 벌일 방침이다. 광화문 광장에 '천막농성장' 설치 방안을 검토하는 등 원내외 투쟁을 다각도로 펼칠 계획이다.

그러나 투쟁 장기화에 따라 내부적으로 피로가 누적됐고, 여론의 역풍도 우려되는 만큼 적절한 시점에 출구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국회에 제출된 정부 추경안 심사를 비롯해 여당의 민생입법 압박을 무시하고 마냥 대여 투쟁 일변도로 나아가기는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편 바른미래당은 이번 국면에서 당이 사실상 두 동강이 날 위기에 처한 만큼 당내 갈등 수습을 일차적 과제로 설정할 전망이다.

패스트트랙에 반대해 온 바른정당 출신 유승민계는 물론 국민의당 출신 안철수계 일부 의원들도 현 지도부에 등을 돌린 상황이어서 당분간은 당내 역학 구도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제3당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보고, 다시금 '제3지대론'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이 다시금 중도개혁보수 진영의 중심에 서서 총선을 앞둔 야권 정계개편의 중심추가 되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민주평화당은 이번 정국에서 모처럼 존재감을 발휘했다고 본다. 29일 심야 의원총회에서 평화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여야 4당 공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당은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지율 회복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바른미래당 등과의 제3지대 논의에 참여하면서 총선 국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전망이다.

정의당은 어렵게 구축한 여야 4당 공조의 틀을 원내 과반의 '개혁입법연대'로 상시화해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민생입법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정의당은 아울러 패스트트랙 최종 통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정치적 공간이 크게 넓어질 것을 고려, 진보 정당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뚜렷하게 내세우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전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향후 상임위원회 심사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90일, 본회의 부의 후 상정까지 60일의 기간을 거치게 된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 열차'와 '총선 열차'가 나란히 달리는 일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 고비마다 여야는 총선 전략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패스트트랙'에 대한 전문가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은 '20대 국회는 없다'고 했지만, 길게 봐야 한 달"이라며 "구실을 찾아 국회로 돌아온 후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국당이) 앞으로도 툭하면 극한 투쟁을 벌여 나름의 '집토끼'를 확실히 잡겠다고 하겠지만, 패스트트랙 대치 자체를 장기화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당분간 국회 정상화나 협치는 어려울 것 같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갔으면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며 "여야 간 충돌보다 야당과 청와대 간의 충돌이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여당과 청와대가 사태를 수습하지 않고 밀어붙이기만 했고, 야당은 국회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며 "야당 입장에선 굴복하느냐 국회를 나가느냐다"라고 평가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패스트트랙 지정과 함께 총선 국면이 시작된 게 맞지만, 이런 식으로 싸움을 1년 내내 할 수는 없다"면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그동안 내뱉은 강경 발언들이 있으니 서로 조금씩 물러설 명분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