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총수 지정 연기…조 회장 별세후 일가 내부갈등 시인한 꼴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한진그룹이 조양호 전 회장 별세 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진[002320] 측은 지금까지 조 전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003490]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홍보했으나 실제로는 경영권을 두고 일가내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속 사정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발표가 연기되면서 알려졌다.

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초 오는 10일로 예정됐던 2019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발표를 닷새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발표 연기가 "한진이 차기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8일 현재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동일인(총수)은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인물로, 지난해 기준 삼성그룹 동일인은 이재용 부회장, 롯데그룹 동일인은 신동빈 회장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진 측은 조양호 전 회장 작고 후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 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소명했다.

한진이 내부적으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공정위 발표 직후 한진그룹 관계자들은 "공정위에 제출할 서류 준비가 늦어져 못 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이런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재계 관계자는 "가족 내부의 내밀한 경영권 다툼인 만큼, 회사 안에서도 최측근 극소수만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조양호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그룹 경영권 향방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이런 관심은 곧 수그러들었다.

조 전 회장 별세 8일 만에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180640] 회장에 오르면서 경영권 승계가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당시 조원태 사장의 한진칼 회장 취임을 두고 그룹 경영권을 확보한 것이며 이는 조 전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도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양호 전 회장이 유언으로 "가족과 협력해 사이좋게 이끌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남매, 또는 자매간 경영권 분쟁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이날 공정위 발표로 이런 관측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한진가가 경영권 분쟁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원태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한진그룹은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대한항공과 진에어[272450], 정석기업 등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한진칼은 조양호 전 회장이 지분 17.84%를 보유하고 있고 조원태 사장(2.34%)과 조현아 전 부사장(2.31%), 조현민 전 전무(2.30%)가 각각 3%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원태 사장 지분이 미미한 데다 조 전 회장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두 자매가 협조하지 않는다면 조원태 사장의 경영권 확보를 장담할 수 없다.

특히 2천억원대로 추산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진칼 지분 일부를 처분하는 상황도 올 수 있어 자칫 조원태 사장뿐 아니라 한진가가 그룹 경영권을 놓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한진칼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지분을 14.98%까지 늘리며 경영권 견제에 나서고 있는 것도 한진가 세 남매에게 모두 부담이다.

dk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