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20승'에 도전하겠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2·LA다저스)이 압도적인 투구로 시즌 5승(1패) 째를 수확했다. 시즌 8차례 등판에서 5승을 거머쥐었으니 현 추세라면 시즌 20승도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일찌감치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 수상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류현진의 주가는 끝모르게 치솟고 있다.
류현진은 12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워싱턴과 정규시즌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7.1이닝 노히트 행진을 포함해 8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했다. 지난 7일 생애 두 번째 완봉승을 포함해 5월 세 차례 등판에서 25이닝을 던져 단 1점만 내주는 짠물 투구로 빅리그 정상급 에이스 입지를 다졌다.
최근처럼 류현진이 등판할 때마다 야수들이 힘을 보태 승 수를 쌓는다면 시즌 전 목표로 내세운 20승도 충분히 노려볼 만하다. 류현진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건강하게 풀시즌을 소화하겠다는 의미로 20승을 목표로 삼았다. 꿈은 클 수록 좋다"고 당차게 밝혔다. 물론 "꼭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실패 가능성도 열어뒀지만 몸 상태에 그만큼 자신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162경기를 치른다. 개막전 선발로 나서 풀 타임을 소화한다고 가정하면 최대 33경기 가량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8경기에서 5승을 따낸 추세를 이어가면 시즌 32경기에 선발등판해 20승을 건질 수 있다는 수치가 나온다. 여름 레이스도 남아있고 장거리 이동과 시차 등에 따른 체력저하도 불안요소이지만 류현진은 빅리그 루키가 아니다. 내전근에 살짝 불편함을 느꼈을 때 과감히 마운드를 내려올 정도로 섬세하게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풀 타임 소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묻어있다. 마운드 위에서도 완급조절은 물론 물오른 제구를 뽐내며 '어떤 타자와 붙어도 자신있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 당당함도 류현진의 '꿈의 20승 달성'을 기대하게 한다.
가까이에서 팀 동료가 20승을 달성하는 과정을 지켜본 것도 도움이 된다. 지난 2014년 왼손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21승을 따낼 때도 5월까지 단 3승에 그쳤다. 하지만 6월 자신이 등판한 6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낸 뒤 7 ,8월 여름 레이스에서 7승을 보탰고 9월 5승을 더했다. 슬로스타터이기도 하지만 구위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자 거침없이 승리를 쌓았다. 당시 커쇼는 27경기에서 198.1이닝만 소화하고도 20승을 돌파(21승 3패, 방어율 1.77)했다. 삼진 239개를 잡아내는 동안 볼넷을 31개밖에 내주지 않아 삼진 7.71개당 볼넷 1개 꼴로 던졌다. 류현진이 시즌 내내 지금의 방어율(1.72)과 압도적인 삼진당 볼넷비율(18.0대 1)을 유지한다면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라는 의미다. 특히 팀 타선이 꾸준히 폭발력을 유지하고 있어 2~3점을 내줘도 이길 수 있다는 신뢰까지 묻어있다. 투수 입장에서는 '한 점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경우 훨씬 편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
직접 비교할수는 없지만 류현진이 부러워한 KIA 양현종의 20승 달성 과정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양현종은 지난 2017년 31차례 등판해 20승 6패 방어율 3.44를 기록했다. 4월에만 5승을 따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5, 6월 두 달 동안 5승을 수확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여름 레이스인 7월부터 9월까지 9승을 보태 꿈의 20승에 다가선 뒤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마침내 20승을 달성했다. 꾸준히 마운드에 올라 안정감 있는 투구를 하면 20승이 따라온다는 것을 증명한 시즌이기도 했다. 류현진은 지난 겨울 둘이 만난 자리에서 "(양)현종이의 20승은 내가 가져보지 못한 기록 중 하나다. 내년에는 나도 20승을 목표로 세울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말 한 것을 지키기 위해 차분하면서도 과감하게 승수를 쌓아가고 있다.
여기에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 수상 가능성까지 피어오르고 있다. LA 타임스는 "경기 전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류현진을 '눈에 띄지 않는 에이스'라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맞지 않다. 다저스타디움에서 류현진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또 "류현진은 스스로를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발전시켰다"며 이날 호투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승 공동 1위에 방어율 2위를 달리고 있으니 자격은 모자람이 없다. 류현진은 ESPN의 2019년 사이영상 예상지표(Cy Young Predictor)에서도 53.4점으로 팀 동료인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54.6점), 자크 에플린(필라델피아, 54.5점)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내셔널리그 투수들 가운데 50점 이상을 얻은 이는 이들 세 명 뿐이다. 류현진의 현재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수치다.

장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