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발자국을 찍으며 전설과 마주했다. LA 다저스의 에이스 류현진(32)이 오는 25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원정경기에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달성한 두 가지 대업에 도전한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이자 다저스 선발진의 기둥이었던 박찬호를 따라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과 이달의 투수상을 정조준한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중심에 우뚝 섰다. 리그 전체 방어율 1위, WHIP(이닝당 출루 허용율) 1위, 내셔널 리그 다승 1위 등 투수 부문 각종 지표를 점령했다. 현지 시간으로 월요일마다 주요 언론이 발표하는 파워랭킹(최근 경기력을 반영한 팀순위)도 류현진의 이름으로 도배됐다. MLB닷컴, ESPN, CBS 스포츠, 디 애슬레틱 등은 일제히 다저스를 랭킹 최상위권에 올려 놓으며 류현진의 괴력투를 집중조명했다.
디 애슬레틱은 "무실점 행진을 7이닝 더 이어갔다"고 류현진의 지난 19일 신시내티전 활약을 돌아보며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2019년 최고 투수는 류현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신시내티 레즈 전을 통해 31연속이닝 무실점을 달성했다. 그 누구도 류현진처럼 던지지 못한다. 류현진은 지난달 20일 밀워키 브루어스 전부터 지난 12일 워싱턴 내셔널스 전까지 볼넷을 범하지 않았다. 올시즌 59.1이닝을 소화하며 탈삼진 59개, 4볼넷, 그리고 무려 1.52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다"며 류현진의 활약에 감탄했다.
숫자 하나하나가 놀랍지만 가장 주목할 기록은 31연속이닝 무실점이다. 류현진은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 2회부터 마운드를 굳건히 지키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다저스에서 통산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앞으로 2이닝 더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면 박찬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박찬호는 2000년 9월 20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전부터 2001년 4월 8일 샌프란시스코 전까지 33연속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박찬호는 다저스에서 2000시즌 18승, 2001시즌 15승을 거두며 최전성기를 보냈다. 2연속시즌 220이닝 이상·200탈삼진 이상을 달성한 리그를 대표하는 파워피처였다. 박찬호 외에도 샌디 쿠팩스, 오렐 허샤이져가 33연속이닝 무실점을 기록해 이 부문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다. 명문 다저스 프랜차이즈를 수놓았던 전설들과 조우하고 있는 류현진이다.
대기록을 달성할 경우 또 하나의 금자탑도 쌓게 된다. 류현진은 5월에 치른 4경기서 32이닝을 던지며 3승1패 방어율 0.28을 기록 중이다. 선발투수 중 5월 최소 방어율과 최다이닝을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매달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투수와 야수에게 각각 이달의 투수상과 이달의 선수상을 수여한다. 5월 이달의 투수상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코리안 빅리거로선 1998년 박찬호 이후 약 21년 만에 대업을 이룰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찬호는 1998년 7월 6경기서 5승1패, 방어율 1.05로 최고 자리에 우뚝 선 적 있다. 박찬호는 지난 11일 "류현진은 시련을 겪으며 더 성숙해지고 정교해졌다. 지난해 부상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몸이 안 좋을 때 과감히 내려오는 절제를 보여줬다. 배짱이 없으면 아픈 것도 참는 수 밖에 없다"며 "최근 9이닝을 완봉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커쇼가 류현진을 보고 배울 것이다. 현진이는 사이영상을 받을 재목"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류현진의 강점은 구위보다 정확성이다. 정확성을 만들기 위해서 열정과 오기가 필요하다"며 시련에 굴하지 않고 강인한 의지를 보여준 류현진에게 박수를 보냈다.
미국 전역에서 두 가지 대업을 노리는 류현진 경기를 중계하는 점도 류현진에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 미국 공중파 채널 FOX는 25일 PNC 파크에서 열리는 다저스와 피츠버그의 경기를 생중계한다. 미 전역 중계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준 포스트 시즌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청자 숫자가 급증하며 방송국도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최고의 중계를 선보인다. 자신을 향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는 상황에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심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류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