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구속)은 범행에 쓸 도구를 사전에 준비하고, 살인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한 제주동부경찰서가 11일 발표한 수사결과와 그간의 브리핑 내용을 바탕으로 고씨의 범행 전후 행적을 시간순으로 보면 고씨는 지난달 9일 아들 면접교섭 관련 재판 때문에 법원에서 전남편 강모(36)씨를 만났고, 이 자리에서 범행일인 지난달 25일이 면접교섭일로 정해졌다.

면접교섭 재판 다음날인 지난달 10일부터 고씨는 인터넷으로 범행 도구나 시신 훼손·유기 방법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고씨가 이때쯤부터 범행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고씨가 충북 청주 자택에서 20㎞ 떨어진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제를 처방받아 병원 인근 약국에서 약을 구입했다.

사건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 결과 피해자 혈흔에서 수면제인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으며, 전문가들이 현장의 혈흔을 분석한 결과 공격흔 없이 방어흔만 발견됐고 피해자가 도망가는 듯한 형태를 보여 고씨가 준비했던 약물을 범행에 사용했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어 이튿날인 지난달 18일에는 고씨가 본인의 차량을 가지고 여객선으로 제주에 입도했다. 시신 훼손에 쓸 도구도 청주 주거지에서 챙겨왔다.

제주에 온 지 나흘 만인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께는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칼, 표백제, 고무장갑, 세제, 청소용 솔, 세숫대야 등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물건을 샀다.

구입 품목을 보면 고씨는 범행 전부터 살해와 시신 훼손, 흔적을 지우기 위한 세정작업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고씨는 해당 물품을 카드로 결제하고, 이어 본인의 휴대전화로 바코드를 제시해 포인트 적립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범행 당일인 지난달 25일에 고씨는 아들과 함께 피해자 강씨를 만나 함께 제주시 조천읍 모 펜션에 입실했다. 고씨 진술에 따르면 입실 시각은 오후 5시께다.

경찰은 입실 당일 밤에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씨는 범행 이튿날인 지난달 26일 아들을 친정집에 데려다준 뒤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고씨는 이후 피해자 시신을 훼손, 상자 등에 나눠 담아 지난달 27일에 펜션에서 퇴실했다.

퇴실일 오후 4시 50분께는 제주시 이도일동 모처에서 강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허위문자를 보내 알리바이를 만들려는 듯한 시도도 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강씨의 가족들이 강씨가 귀가하지 않는다며 경찰의 문을 두드렸다. 오후 8시 10분께 노형지구대를 찾아 미귀가 신고를 했고, 2시간여 뒤인 오후 8시 14분께 자살의심 신고를 했다.

이에 경찰이 강씨의 휴대전화 마지막 신호가 잡힌 제주시 이도일동 주변을 수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때 경찰은 고씨에게 전화를 걸어 강씨에 대해 물었는데, 고씨는 "25일에 아들과 같이 강씨를 만나 펜션으로 이동했고, 당일 오후 8시경 펜션에서 나갔다"고 진술했다.

하루가 지나 지난달 28일에는 범행과 청소에 사용할 도구를 샀던 제주시의 한 마트에 다시 들러 사용하지 않은 물품을 일부 환불했다. 고씨가 이날 오후 3시 26분께 해당 마트에 표백제, 테이프, 공구류 등을 갖고 가 환불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이어 같은 날 오후 6시가 넘어서는 제주시의 또 다른 마트에 들러 종량제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 등을 샀다. 경찰은 고씨가 마트에 들른 후 여객선을 타러 가기 전 여행용 가방과 봉투에 시신을 옮겨 담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는 이어 제주항에서 오후 8시 30분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을 탔고, 출항 한시간여 뒤인 오후 9시 30분께 배에서 여행용 가방을 열어서 훼손된 시신 일부가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7분가량에 걸쳐 바다에 버렸다.

이후 지난달 28일 늦은 밤 완도항에 도착한 고씨는 야간에 차를 몰아 이튿날인 29일 새벽 경기도 김포에 있는 가족 명의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고씨는 범행 후 이동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시신 훼손에 쓸 도구를 김포로 주문했다. 이 도구를 받아 김포의 아파트에서 29∼31일 사이에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김포에 도착한 후에도 29일 오후 3시 30분께 인천의 한 마트에서 사다리와 방진복, 덧신, 커버링 테이프 등을 구입한 것이 확인됐다. 경찰은 시신을 2차 훼손하는 과정에서 실내나 옷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다리를 이용해 실내에 커버링 테이프를 붙이고 방진복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는 지난달 31일 새벽에 김포 아파트의 쓰레기수거함에 피해자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봉투를 버렸고, 이후 청주의 주거지에 갔다.

그리고 이튿날인 지난 1일 오전 마침내 고씨가 청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긴급체포돼 제주동부경찰서로 압송되면서 범행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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