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마침내 잡아, 다른 강간 살인죄 무기수 복역중

10건중 9번째 사건 피해자 속 옷 DNA와 일치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 풀려
마지막 10번째 사건 공소시효 만료 처벌 불가

지난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마침내 드러났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처음 발생한 1986년 9월 이후 33년 만이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만료해 화성사건으로는 이 남성을 처벌할 수 없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장기 미제로 남아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에서 검출된 유전자(DNA)가 현재 강간 살인죄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56)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범행 당시 이춘재는 27세였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올 7월 중순 오산경찰서(옛 화성경찰서) 창고에 보관돼 있던 증거물 중 속옷 등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다시 감정을 의뢰한 결과 남성의 DNA를 발견했다.

이춘재와 일치하는 DNA가 처음으로 나온 증거물은 모두 10차례의 화성사건 가운데 1차례 사건의 피해여성의 속옷이다. 이 속옷 외에도 다른 1차례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 중에서 그와 일치하는 DNA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춘재의 DNA가 피해자의 겉옷이 아닌 속옷에서 검출됐다는 점, 화성사건의 범죄수법이 대체로 비슷한 점 등을 토대로 그를 화성사건의 진범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8건의 범행도 A 씨가 저질렀다고 확신할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 처제를 강간 살인한 혐의로 기소돼 한때 사형이 선고됐다가 이듬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경찰은 이춘재의 DNA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10명의 여성이 희생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9번째로 발생한 1990년 11월 15일 여중생 김모 양(13) 살인 사건에서 검출된 것과 일치했다고 밝혔다. 10건 중 1988년 9월 16일 발생한 박모 양(13) 살인 사건의 범인 윤모 씨(52)는 1989년 7월 검거돼 같은 해 10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나머지 9건의 범인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후 대구의 '개구리소년 실종사건'과 함께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국내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장기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배우 송강호 주연의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모아온 사건이다.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여서 동원된 경찰 연인원만 205만여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고, 수사대상자 2만1천280명, 지문대조 4만116명 등 각종 수사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2006년 4월 2일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보관된 증거를 분석하는 등 진범을 가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전담팀을 구성하고 DNA 기술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증거를 재차 대조하는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수사는 수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범인은 71년 이전 태어난 男"
영화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 과거 발언 재조명

"시나리오 쓰는 과정서
범인 꼭 만나고 싶었다"

용의자 체포로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2003)과 이 영화를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과거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앞서 봉 감독은 현재 50대인 1971년 이전에 태어난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에서 유력한 용의자 역시 20대 남성으로 묘사됐다. 봉 감독은 2013년 10월 살인의 추억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저는 범인, 그 사람의 심리 이미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실 며칠 전부터 만약 그 분이 살아 계시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올 거라 생각했다. 혈액형은 B형이고, 1986년 1차 사건으로 보았을 때 범행 가능 연령은 1971년 이전에 태어난 남성"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봉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 연극 '날 보러 와요'(김광림 작)가 원작이다. 봉 감독은 이 연극 위에 본인이 직접 자료를 찾고, 관계자들을 만나 취재한 내용을 추가해 시나리오를 썼다.

개봉 당시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기억하는 것 자체가 범인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라며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범인을 꼭 만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제사건을 다룬 까닭에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끝난 영화의 결말이 이번 용의자 검거로 마침내 '닫힌 결말'이 될지 주목된다. 영화는 영화를 보러왔을 범인을 바라보는 듯 주인공 박두만(송강호)이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며 끝난다.

'5년의 극한 공포·10명의 죽음'

모두 알몸·반나체 살해
2006년 공소시효 만료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처음 발생해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경찰이 피해자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86년 10월 23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재 화성시 진안동)의 한 농수로에서였다. 박모(당시 25세)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2개월여 뒤 인근에서 박모(당시 25세)씨와 이모(당시 23세)씨가 잇따라 살해됐다. 이때 '화성연쇄살인사건'이란 명칭이 처음 붙었고, 비극은 이후 5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후 살인은 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 화성시 일대 반경 3㎞내에서 이어졌다.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87년 1월 10일 홍모(당시 19세)양 △87년 5월 2일 박모(당시 29세)씨 △88년 9월 7일 안모(당시 54세)씨 △90년 11월 15일 김모(당시 14세)양 △91년 4월 3일 권모(당시 69세)씨가 잇따라 희생됐다. 2006년 4월 2일로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피해자들은 모두 알몸이나 반나체 상태로 살해됐다. 모방범죄로 밝혀진 연쇄살인 9건의 살해수법에는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 옷가지가 이용됐다. 범인은 주로 버스정류장과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있다가 범행했고, 흉기를 살해도구로 쓰지 않았다.

'처제 성폭행 살해'시신 유기
이춘재, 수면제 먹여 범행 사형 선고후 무기 징역
살인마 유영철, "화성살인범 복역중" 예언 적중?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는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또다른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예언이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영철은 지난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지난 2004년 체포된 후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춘재가 현재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이 감옥에 있을 것이라던 살인마 유영철의 예언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6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유영철은 화성부녀자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두고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만약 감옥에 있지 않거나 죽지 않았다면 살인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춘재는 마지막 화성 연쇄살인 사건인 10차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뒤인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춘재는 당시 부인이 가출한 뒤 자신의 집에 온 20대 처제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뒤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까지 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