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영철도 범죄 부풀려 자백…사실이면 8차 범인은 억울한 옥살이
경찰, 진술 신빙성 검증에 총력…자칫하면 이춘재 특정개가 빛바랠 수도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인 이춘재(56) 씨가 과거 범인까지 검거된 살인사건마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이 씨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 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 씨는 지난달 24∼27일까지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4∼7차 대면조사에서 모두 14건의 살인사건과 성폭행 및 성폭행 미수 등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무더기로 자백했다.

14건의 살인사건이라는 말에 가려져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씨가 자백한 살인사건들 가운데 문제의 '8차 사건'이 포함됐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애초 화성사건은 모방범죄 혹은 별개의 범죄로 여겨진 하나의 사건을 제외한 9차례의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그동안 화성사건에서 빠졌던 사건이 바로 8차 사건이다.

문제는 당시 이 사건의 범인이 붙잡혔고 처벌까지 받았다는 데 있다.

이 씨가 소위 '소영웅심리'로 하지도 않은 범죄사실에 대해 허세를 부리며 자랑스레 늘어놨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일 경우 과거 경찰이 엉뚱한 사람을 붙잡아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꼴이 된다.

이 씨의 주장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은 현재 경찰이 과거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수사력을 집중해 검증하고 있지만 일단 이 씨와 같은 흉악범이 자신의 범죄행각을 부풀린 사례는 더러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를 만든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개월여 동안 출장마사지사 등 21명을 살해했지만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수사를 통해 그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접한 다른 사건마저 자신의 소행이라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8차 사건은 나머지 화성사건과 범행수법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의 한 가정집에서 잠자던 박모(13) 양이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나머지 화성사건은 인적이 드문 야외에서 이뤄졌지만 이 사건은 피해자의 집에 침입해 벌인 것으로 범행수법이 훨씬 대담하고 피해자를 결박하는 데 피해자의 속옷 등을 매듭지어 사용한 화성사건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 씨가 허세를 부리기 위해 또는 수사에 혼선을 주고자 고의로 허위주장을 했을 수 있고 그의 기억이 왜곡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씨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면 과거 경찰이 부실한 수사로 애꿎은 시민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경우 현재 경찰은 과거 경찰이 잡지 못한 희대의 연쇄살인범을 뒤늦게나마 붙잡는 큰 성과를 올리고도 과거 경찰의 과오로 빛이 바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8차 사건뿐만 아니라 이 씨가 자백한 모든 사건을 철저히 검증해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zorb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