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단식 아니라 협상해야"…'일방처리 시사'하며 한국당 압박
한국당 "불법 패스트트랙 중단하고 원점 논의해야"…총력 저지전 돌입
黃, 내일 여야5당 정치협상회의 불참…여야 3당 원내대표 협상도 난항 전망

(서울=연합뉴스) 강병철 이슬기 기자 =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무기한 단식에 나서며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황 대표가 조만간 본회의에 부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연비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27일 부의)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다음 달 3일) 저지를 단식 결행의 이유로 꼽으면서다.

여야가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막판 협상을 예고한 가운데 황 대표가 초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이들 패스트트랙 법안의 여야 합의 처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불가피할 경우 한국당을 뺀 다른 야당과의 공조 복원을 통해 패스트트랙 법안의 일방 처리도 불사한다는 기류여서 제2의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 공수처법 ▲ 연비제 철회를 요구하면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공수처법과 연비제에 대해 각각 "문재인 시대 반대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자들은 모조리 사법 정의라는 이름으로 처단하겠다는 법", "국민의 표를 도둑질해서 문재인 시대, 혹은 문재인 시대보다 더 못한 시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의 이합집산법"이라고 비판한 뒤 문재인 대통령의 철회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지소미아에 대해서는 "지소미아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서 "일본과의 경제 갈등을 지소미아 폐기라는 안보 갈등으로 뒤바꾼 문 대통령은 이제 미국까지 가세한 더 큰 안보 전쟁, 더 큰 경제전쟁의 불구덩이로 대한민국을 밀어 넣었다"고 비판했다.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서 한국당의 대여 투쟁 분위기도 더 경직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국회의원직 총사퇴와 무기한 광화문 농성 등의 제안도 나오고 있다.

박맹우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패스트트랙 법안은 불법으로 사보임까지 해서 야합으로 해놓고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면서 "최소한도 일단 중단을 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법안 및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황 대표의 반대 논리를 궤변이라고 지적하면서 황 대표의 단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에 대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선거법 개정과 검찰 특권 해체를 위한 공수처 설치를 '좌파 독재법'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게 민주당 입장이다.

이재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작 민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황 대표와 한국당의 발목잡기"라면서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없음을 넘어 민폐"라고 비판했다.

원내 핵심당직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단식을 할 일이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한다"면서 "책임 있는 공당의 당 대표라면 다가올 정치 대란에 대비해서 차라리 이해찬 대표와 담판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황 대표의 지소미아 연장 주장도 '일본에 귀책 사유가 있다'며 일축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국민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원칙론과도 궤를 같이한다.

앞서 이인영 원내대표는 전날 당 회의에서 "황 대표가 아무 근거도 없이 지소미아를 종료하면 '퍼펙트스톰'이 올 것이라며 국민의 불안감에 불을 지피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끝내 '결사반대'만을 내세워 패스트트랙 법안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경우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여야 4당 공조'를 전면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이르면 내주부터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및 창당 진행 중인 대안신당이 참여하는 '4+1 테이블'을 공식화하는 것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등 군소야당도 황 대표의 단식을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감정, 시대 정신과 괴리된 단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서 여야 간 협상 차질도 현실화되고 있다.

여야 5당은 지난 18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 간 정치협상회의를 가동하기로 하고 이날 일정을 확정하기 위해 실무회의를 열었으나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서 차질을 빚게 됐다.

여야 5당은 21일 정치협상회의를 진행키로 했으나 황 대표가 불참하면서 의미있는 협상은 어렵게 됐다.

실무회의 한국당측 참석자인 김선동 의원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모양새상 가기는 좀 그런 상황인 것 같아서 이해들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주한미국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한 한국 국회의 목소리를 미국 조야에 전달하기 위해 이날 출국한 민주당 이인영·한국당 나경원·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간의 국회 현안 협의도 제한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애초 이들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3박 5일간 미국에서 함께하며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방향을 비롯한 정기국회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밀도 있는 협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당 대표가 단식에 들어가면서 나 원내대표의 협상 여지도 크게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야 5당 대표와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간 협상에서도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한국당을 포함한 5당 간 합의 처리하는 노력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한국당을 뺀 4당 간 공조로 처리하느냐는 선택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적으로 보면 선거법 개정안이 오는 27일 본회의에 부의되고 검찰개혁 법안이 내달 3일 본회의로 넘어가는 만큼 12월 초·중순이 결단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민주당은 한국당을 빼고도 선거법 내용을 일부 조정하면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의 본회의 의결정족수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선거법의 경우 '게임의 룰'이라는 점에서 합의 처리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일부 감지된다.

민주당 원내 핵심관계자는 "이번 주 후반부터 패스트트랙 정국이 중대한 고비에 들어간다"면서 "한국당의 태도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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