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시니어센터에서 한인 지적 장애인들에게 미술 가르치는 박정석 교수

30여년간 성신여대 미술대서 교수로 재직
은퇴한 후 LA 이주, 나눔교실서 '재능기부'

맑고 투명한 35~60세 학생들 감성에 반해
"72세 나이에 인생의 새로운 가르침 얻어"

"남들 은퇴 할 때 거둬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로 72세. 성신여자 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에서 30여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박정석 교수는 요즘 하루하루가 설레인다. '가르치는게 천직'이라는 그에겐 은퇴 대신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렸다.

3년전 미국에 새 터전을 일군 그는 어느날 우연히 신문에서 한 문구를 보게됐다.

"한인타운 시니어 커뮤니티센터 나눔교실에서 지적 장애인을 위한 미술 재능 기부 할 사람을 찾는다는 구인 기사였어요. 망설임도 없이 연락했죠."

그렇게 박교수와 아이들의 인연은 시작됐다. 박교수의 '어른 아이'제자들은 35세~60세 사이의 지적 장애인들이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게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들만 가르쳐봐서 그런지 그들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쉽진 않았어요. 모든걸 처음부터 다시 공부 해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박 교수는 매주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음 수업 준비를 위해 일주일 내내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제자들이 금방 싫증을 내서 한시도 지루하지 않은 수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가 제일 잘 할줄 아는 미술을 접목시켜 교육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실제로 제자들에겐 일주일 한번 있는 미술 수업이 삶의 낙이다. 수업 시작 전부터 교실앞에 삼삼오오 줄을 서서 선생님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교실 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눈을 반짝반짝 하면서 '선생님 오늘은 뭐해요?'하고 기대에 부푼 떼창을 하는 제자들 덕분에 박교수는 덩달에 신이난다. 그는 센터측에 간청해 본래 1시간 수업을 1시간 30분으로 연장시켰다. 아무래도 좀더 잘 가르치기 위해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제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처음 3명으로 시작한 나눔 교실은 어느덧 30명이 됐다.

수강생들이 가장 흥미로워 하는 수업은 기름과 물의 관계를 가지고 그림을 만들어 나가는 마블링 기법이다. "'너의 하늘'과 '너의 별'을 그려보세요. 여러분이 그린 것은 여러분겁니다" 박교수는 지적 장애가 있는 제자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업 내용을 전부 이해하는 것은 버거울지 몰라도 표현력 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가끔 그들이 갖고 있는 맑고 투명한 창조성 등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물론 마냥 행복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다른 시설로 옮겨가거나, 남들과 잘 섞이지 못해 결국 그만두거나…힘든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제자들을 만나면 즐겁다.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할 72세에 다시 거둬들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거둬들인다는 것은 해야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박교수는 "남들과 반대되는 삶을 살게 되어서 감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제자들에게 외관과 상관없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 뜻이 이루어지고 진심이 깃든 그림이 가장 가치있다고 항상 말해줍니다"
그러면서 박 교수 자신도 '살면서 남들 앞에 어떻게 보여질까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은 아니었나'되돌아본다. 순수한 아이들의 삶의 잣대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