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라 마셔라'그만, 송년회가 달라진다

[뉴스포커스]

젊은 세대 주도 실속 위주의 새로운 트렌드
밤 대신 낮, 술 대신 차…'신년회'로 대체도

음주가무 회식 스트레스 참석자 점점 감소
"매년 같은 동문회 모임, 창의적 변화 필요"

#자바의 한 업체에서 일하는 이모씨(37)는 최근 있었던 회사 송년회를 자랑하고 다니느라 바쁘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피해 송년회 일정을 잡은 것은 연말에 이런저런 개인적인 모임으로 바쁠 직원들을 위한 회사측의 배려였다. 장소도 호텔이나 식당이 아니고 회사 웨어하우스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로 꾸며 파티 분위기를 내고 푸짐한 선물, 그리고 다양한 메뉴의 식사와 약간의 주류 등 여느 송년회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송년회는 직원들만을 위한 모임이 아니었다. 회사 사장은 직원들 뿐아니라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까지 초대했다. 그리고 송년회 내용도 특이했다. 술 먹고 떠들고 가라오케를 하는 대신 직원들과 가족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식사를 즐기며 열띤 응원 속에 팀을 나눠 배드민턴 시합을 펼쳤다. 또 장기자랑을 할땐 온 가족이 무대로 나와 평소처럼 노래와 춤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특히 초대된 모든 어린이 손님들은 회사에서 준비한 푸짐한 장난감 선물을 한아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씨는 "매년 송년회 때마다 직장 상사 눈치보며 억지로 참석하다시피 했는데 직원들과 가족들에 대한 회사측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며 "정말 잊지 못할 송년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세태 변화 '실속' 대세
'부어라 마셔라'하던 송년모임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한인타운의 송년회는 실속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들의 트렌드에 걸맞게 그 모습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밤 대신 낮 송년회, 술을 차로 대신한 송년회, 또는 편안한 식사 속에 반주를 즐기거나 운동 경기를 관람 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의 이색 송년회들이 눈길을 끈다. 못 마시는 술을 강요하고, 잘 못 부르는 노래를 억지로 부르게 하는 연말모임은 점점 더 갈 곳을 잃고 있다한인 타운의 '로즈 앤 블랑크 티룸'의 연말 예약은 이미 꽉 찬지 오래다. 이곳은 영국 귀족들이 오후에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에프터눈 티) 문화를 접목시켜 다양한 차와 마카롱, 컵케익, 샌드위치 등의 핑거 푸드를 접시에 담아 제공하는 이색 까페다. 이 카페의 김민주 대표는 "12월 크리스마스 파티부터 연말까지 이미 송년회 예약이 완료 된 상태"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이 업체가 오후 7시면 문을 닫는다는 것. 한 손님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송년회가 부담될 수 있는데 주중에 아이들을 데려와서 이런 모임을 가지는 것은 실속있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주중 낮 시간엔 사내 워킹맘들이 송년회 단체 예약을 하고 오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LA에 위치한 스크린과 배팅 케이지가 접목된 스크린 실내 야구장인'스트라이크 존'은 12월은 물론 내년 1월도 주말은 신년회 예약으로 자리가 없을 정도다. 술과 가라오케 위주의 다른 모임과는 달리 실내 야구장, 포켓볼 다이 등이 구비된 이곳에선 자유분방한 송년회를 만끽할 수 있다. 케이지 안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일행은 이를 관람하거나 홀에서 식사와 주류를 즐긴다. 대형 스크린도 완비 되어 있어 실제 스포츠 경기 관람도 가능하다.

▶한국도 "송년 회식 스트레스"
이색송년회 붐이 부는 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20~30대 직장인 7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송년회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로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26%)'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자리가 불편하다(24%)'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회식을 무작정 싫어하는 건 아니다. 응답자의 87%는 '이색 회식'을 희망했다. 이색회식에는 연극·영화를 보는 문화 회식(23%), 마사지 등을 받는 힐링 회식(21%), 스포츠를 즐기는 레포츠 회식(16%) 등이 꼽혔다.
LA의 한 대학교 동문회장은 "매년 똑같은 방식의 송년모임이 이젠 별로 인기가 없고 참석 동문 인원도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젊은 층 동문들의 참여도가 매우 저조하다보니 열정도 전보다 훨씬 못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송년모임의 변화를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