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걷는 길은 늘 '최초'…보수적 클래식 음악계의 '파격'

화제인물/'샌프란시스코오페라' 음악감독 발탁 지휘자 김은선씨

美 여성 최초 메이저 오페라단 음악감독 맡아
세계서 한국인으론 정명훈 이어 두번째 쾌거

김대중 정부 민정수석·장관 지낸 김성재씨 딸
"'女 지휘자'아닌 그냥'지휘자'로 불리는 시작"

지휘자 김은선(39) 씨가 2021년 8월 1일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오페라(SFO)의 음악감독을 맡는다고 이 오페라단이 5일 밝혔다. SFO의 총감독 매슈 실벅은 이날 김씨에게 5년간 음악감독을 맡기기로 했다며 이같이 발표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김씨가 "미국의 메이저 오페라단에서 음악감독직을 맡는 첫 여성이 될 것"이라며 "그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이, 그것도 외국 출신의 여성이 주요 오페라 하우스의 음악감독을 맡게 된 것은 파격적인 일로 평가된다. 특히 한국인이 세계 주요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을 맡는 것은 지휘자 정명훈 씨에 이어 두 번째이자 한국인 여성으로는 처음이다.

"언젠가 '여성 지휘자'도 그냥 '지휘자'로 불리는 그날이 오겠죠. 저는 아마 그런 일의 시작이 될 겁니다."

김은선씨는 미국 메이저 오페라단의 '첫 여성 음악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여성 지휘자'와 관련해 7년 전 작고한 외할머니 사연을 얘기했다. 1912년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된 외할머니는 '여의사'로 불렸다고 한다. 김씨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여의사라는 얘기를 항상 들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SFO의 음악감독직을 맡게 된 데 대해서는 "이런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임 지휘자를 해달라고해서 너무 감격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인 최초, 여성 최초 등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다녔다.

그는 2010년 마드리드의 왕립오페라극장(Teatro Real)에서 로시니의 희극 오페라 '랑스로 가는 여행(Il Viaggio A Reims)'을 지휘했다. 1858년 이사벨 여왕 2세 때 창립한 유서 깊은 이 극장에서 여성이 지휘봉을 잡은 건 김씨가 처음이었다.

그는 올해 6월 공연된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를 지휘하며 SFO에 데뷔했다.

김씨는 "당시 지휘하러 왔는데 그때 이미 너무 호흡도 잘 맞아 이런 하우스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인은 몰랐지만 이미 SFO는 2∼3년 전부터 상임 지휘자를 찾고 있었고, 운좋게 선택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발탁 비결에 대해 "지휘할 때 어떻게 하면 악보에 쓰여 있는 대로 작곡자의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데, 그것을 좋게 봐준 것 같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휘자에 대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리드하지만 결국 음악이라는 소리 자체는 음악가들한테서 나온다"며 "제 역할은 악보에 있는 작곡자의 의도를 그 사람들한테 잘 전달해서 좋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도와준 인물 중 한 명으로 아버지를 꼽았다. 그의 부친은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민정수석을 했고 정책기획수석을 거쳐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이다.

김씨는 "제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저희를 항상 믿어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줬고, 공부하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휘자가 된 뒤로는 지휘자가 리더로서 많은 사람을 앞에 놓고 해야 하는 일인데 너무 작은 일, 소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등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휘자에 대해 '실수를 안 할 수 없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악기를 들고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 가서 지휘하면서 배워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