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은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유세프 카쉬가 93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지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카쉬는 대 스타는 물론이고 예술가, 과학자, 왕족, 대통령, 수상 등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인사들을 유명한 일화와 함께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처칠, 케네디, 후르시쵸프, 카스트로, 헤밍웨이, 아인스타인 등 세계적인 인물 치고 그의 렌즈에 안 잡힌 사람이 없다. 해서 그의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는 '전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주로 흑백사진을 즐겨 하던 카쉬는 사진 찍기 전에 잠시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거나 당황하게 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나타내는 가장 솔직한 순간의 표정을 잡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인스타인에게 종교에 대한 질문을 하여 그가 약간 거북한 듯이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는 순간을 잡는 식이었다. 윈스턴 처칠을 만났을 때였다. 카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별안간 그가 가장 즐기는 시가를 그의 입에서 빼냈다. 왼손을 왼쪽허리춤에 대고 오른 손으로는 의자 등받이를 잡은 이 양반 순간 몹시 불쾌해진 얼굴로 약간 찡그리고 심술궂은 얼굴을 했다. 이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의 유명한 사진인데 근엄해 보이지만 실은 화가 나 있는 상태다. 사진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화가들이 물감으로 그렸을 뿐 유명인의 자화상이 그려지는 데 일화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예수의 모델로 죄 없고 선함을 나타내는 얼굴을 찾기 위해 수 백 명의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예수와 열 한 명의 제자들을 다 그리고 난 7년 후에 마지막으로 배반자 유다의 모델로 흉터가 있고 죄악으로 가득한 얼굴을 가진 사람을 죄수들 중에서 찾아 그렸는데 알고 보니 전에 예수의 모델이었던 동일한 인물이었다는 설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태도에 따라 같은 인물이라도 이렇듯 선과 악의 다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지 워싱턴은 어땠을까? 그는 치과 질환을 몹시 심하게 앓았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 중에서는 잇몸에 생긴 고름이 볼을 뚫고 나와 생긴 심한 흉터가 얼굴 왼쪽 뺨에 있는 것이 있는데 이 그림은 찰스 필의 작품으로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우리가 흔히 보는 1 달러짜리에 있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 남아 있던 이를 뽑고 난 후 움푹 들어간 뺨을 살려내기 위해 길벗 슈트와트가 솜 덩어리를 둥글게 말아 양쪽 입안에 넣고서 그린 것이다. 그 덕에 장군의 기백 있고 강한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유순한 할머니 같은 인상이 됐다는 혹평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의 본질이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지 본래와 다르게 왜곡된 모습으로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작가에게는 작품성과 전문성 못지않게 바른 인식과 책임의식도 요구되는 게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