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헌기구 구성 계획까지 밝혀…개헌론 급물살 탈듯
與 "적극 환영" 뒷받침 태세 완비…내부결속·대야 견제 다목적카드
野 "비리은폐용 경계"…개헌 자체 반대 못하고 복잡한 속내
유력 후보 文 "방탄개헌" 반대…여야 주자들도 의견들 다양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헌법 개정을 전격적으로 제안하면서 이를 예상치 못했던 정치권이 핵폭탄을 맞은 듯 요동치고 있다.

임기를 약 1년 4개월, 차기 대통령선거를 약 1년 2개월 남긴 시점에서 '깜짝 카드'로 던져진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앞으로의 대선 구도마저 뒤흔들 메가톤급 이슈여서 이제 막 출발점에 선 대선 레이스를 더욱 복잡다단하게 끌어갈 변수로 떠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을 요구해온 목소리가 다수였고 국민 여론 역시 개헌 찬성이 높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민생경제의 어려움', '엄중한 국제 정세', '개헌 블랙홀론' 등을 들어 개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여권과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에 따른 국정 지지도 하락 속에서 박 대통령이 이를 정면돌파하기 위한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를 내던졌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해온 야당이 무작정 이를 반대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은 '1987년 체제'의 낡은 틀을 바꿀 때가 됐다는 국민과 국회의 여망을 통치권자로서 여과 없이 수용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야당에서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와 명분을 부각했다.

아울러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2017년 체제'라는 분명한 목표와 함께 정부에 개헌 조직을 설치하는 등 강력하고도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을 제시했다. 국회에 대해서도 조속한 개헌특위 구성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공산이 커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단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나섰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일단 '권력형 비리'를 덮으려는 정국 전환용 계책이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하긴 했지만, 개헌 자체를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다.

두 야당은 내부적으로 대책 회의를 소집하는 등 다소 당황한 기류 속에서 개헌 정국을 돌파할 전략 마련에 착수하는 등 정치권 전체가 대통령의 한 마디에 이미 개헌 정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야당 출신인 정세균 국회의장과 우윤근 사무총장도 '대통령 주도 개헌'을 경계하면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더욱 방점을 뒀다. 국회 개헌특위 구성 등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대선 정국을 앞둔 여야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30년 만에 대선 정국과 개헌 정국이 겹치는 정치적 전환기가 만약 도래하면 지금까지의 대선 전략은 크게 의미가 없어진다. 여야 모두 집권 전략을 급선회해야 하고 대권 잠룡들의 지금까지 위상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무엇보다 야권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 정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반대하던 시기에는 정부·여당을 흔들 거대 이슈 중 하나로 개헌 카드만큼 유효한 게 없었지만, 이제 대통령이 '퍼스트 무버'로 기선을 잡은 상황에서는 야당과 야권 대선주자들이 '객(客)'으로 뒤처져 따라가는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최순실·우병우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여권은 내심 정국을 반전시킬 절호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당·정·청이 개헌을 고리로 뭉치면서 야권을 견제하고 여권 내부의 이반을 잠재울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야권 내 개헌론자와 반(反)개헌론자를 갈라놓을 분열책으로도 쓸 수 있을 만큼 개헌 카드는 다목적이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국회에 발의할 수 있는데, 현재 박 대통령의 기세로 볼 때 국회가 개헌안을 내지 않을 경우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그러나 개헌안이 발의되더라도 개헌이 실제 이뤄지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개헌안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구조에 대한 정치권의 의견이 엇갈려 있어서 개헌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더라도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만 무성한 채 '말잔치'로만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개헌의 실현에 가장 중요한 차기 대권 주자들이 개헌에 모두 찬성할지, 찬성하더라도 실제 권력구조에 대한 합의를 이뤄낼지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실제로 대선 잠룡들의 반응은 소속 정당보다는 각자 개인의 처지와 이해관계에 따라 상당히 엇갈려 나오고 있다.

야권의 유력 후보군들은 '박근혜표 개헌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여권에서도 개헌 논의 찬성 입장을 표명한 후보들도 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에는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현실 정치인 가운데 대선주자 여론 지지도 1위를 달려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역시 야권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사실상 반대했다.

문 전 대표는 "비리 게이트를 덮으려는 방탄 개헌"이라며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고, 안 전 공동대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먼저 개편해야 한다며 '선(先)선거법 개정-후(後)개헌'을 요구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 역시 안 전 공동대표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먼저 바꾼 뒤에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여권 잠룡임에도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에 대한 반대의견을 가장 명료하게 공식화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경제·안보 위기 극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개헌 논의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권력구조만 건드리는 원 포인트 개헌보다는 국민 주도의 포괄적 개헌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오 전 시장은 또 내년 현 정부 마지막 재·보궐선거가 열리는 4월까지 개헌을 시도해다 안 되면 차기 대권 주자들의 몫으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김영삼 키드'로 15대 국회 때 원내에 동반 입성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김 전 대표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범국민개헌특위'를 조속히 구성하고 내년 4월 재보선 때 개헌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자는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했다. 그는 또 "대통령의 결단을 환영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손 전 대표도 "개헌은 제7공화국을 열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라고 말했다.

leslie@yna.co.kr